좋은 관계를 만드는 화법, '공손성의 원리'

언어의 순기능은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것만 아니라 타인과 정서를 교감하며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있다. 이러한 효과가 발휘되려면 화법, 즉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대화할 때 청자를 배려하고 존중하며 예의 바르게 말해야 한다는 공손성의 원리를 지켜 말하면 타인과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

공손성의 원리에는 요령의 원리, 관용의 원리, 찬동의 원리, 겸양의 원리, 동의의 원리가 있다.

좋은 관계를 맺는 데 도움을 주는 공손성의 원리는 행복하고 윤택한 삶을 꽃피우게 하는 양분과도 같다.
사람은 세상에 태어난 지 6개월쯤이면 입으로 소리를 낼 수 있고, 만 3~4세 이상이 되면 문장으로 된 말을 구사하며 타인과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단순히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해서 언어의 효용이 발휘되는 것은 아니다. 언어의 순기능은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것만 아니라 타인과 정서를 교감하며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있다. 이러한 효과가 발휘되려면 화법, 즉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나라 국어 교과서에는 다양한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소통하는 능력을 교육하기 위해 화법을 소개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공손성의 원리’이다. 공손성의 원리는 언어학자 리치(Leech)가 제시한 것으로, ‘정중 어법’이라고도 한다. 대화할 때 청자를 배려하고 존중하며 예의 바르게 말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세부적으로는 요령의 원리, 관용의 원리, 찬동의 원리, 겸양의 원리, 동의의 원리가 있다.


요령의 원리


‘요령의 원리’는 상대방에게 어떠한 의무나 책임을 지게 하는 부담스러운 표현을 최소화하고 이익이 되는 말을 최대화하는 것이다. 상대에게 무언가를 부탁하거나 요구할 때, 화자는 그 요구를 반드시 들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청자에게 강요하거나 직설화법으로 말하기 쉽다. 그러나 이는 도리어 청자의 반감을 사서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는 결과를 초래한다. 따라서 화자의 요구가 응하려면 그것을 들어주는 청자를 고려, 요령의 원리에 의거하여 말해야 한다.

“늦게 오면 밥 못 먹을 줄 알아”라는 말과 “시간 맞춰 와서 맛있게 먹자”라는 말은 상대방이 식사 시간에 맞춰 귀가하기를 원한다는 동일한 뜻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전달되는 느낌은 확연히 다르다. 전자는 청자가 요구에 응하지 않았을 때 받게 될 손해를 강조하며 부담을 주는 표현이고, 후자는 요령의 원리를 적용해 청자에게 부담을 주는 대신 일찍 귀가했을 때 얻게 될 이익을 언급한다.

서두에 ‘미안하지만’, ‘괜찮다면’, ‘가능하다면’ 등과 같은 양해의 표현을 덧붙이는 것과, ‘~해줄 수 있어?’와 같이 상대에게 선택의 여지를 주는 질문 형식으로 말하는 방법도 청자를 배려해 완곡하게 말하는, 요령의 원리에 속한다.


관용의 원리


‘관용의 원리’는 화자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표현을 최소화하고, 부담을 떠안는 표현을 최대화하는 것이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원인이 상대방에게 있더라도 그 점을 부각하거나 상대를 탓하듯 말하지 않는 화법이다.

누구나 지적이나 비난을 받으면 자신을 방어하는 태도를 취하기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갈등이 유발된다. 그럴 때 ‘네가 ~해서’ 대신 ‘내가 ~해서’ 식으로 화자 자신을 주어로 삼아 관용의 원리로 말하면 갈등을 방지할 수 있다. 가령 상대가 하는 말이 안 들렸을 때,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어”라고 ‘네 탓’을 하는 대신 “내가 잘 못 들었는데, 다시 말해줄 수 있니?”라며 ‘내 탓’으로 돌려 말하는 것이다. 아이가 컵을 넘어뜨려 물을 쏟거나 배우자가 약속을 잊어버렸을 때도 질책과 비난 대신 “엄마가 컵을 이쪽에다 놓을 걸 그랬어”, “당신이 약속을 잊어버리면 나를 소홀히 여기는 것 같아 서운해”라고 부드럽게 말하면 어떨까. 관용의 원리는 상대방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생각과 행동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찬동의 원리


‘찬동의 원리’는 상대가 들어서 기분 좋은 칭찬과 맞장구를 최대화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데, 이 욕구를 채워주는 것이 바로 ‘칭찬’이다. 칭찬은 좋은 점이나 착하고 훌륭한 일을 높이 평가하는 말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아첨과 다르다.

칭찬에는 놀라운 힘이 있다. 청자에게는 기쁨과 용기를 주고, 화자에게는 인덕과 호감을 쌓게 한다. 칭찬은 사람 사이의 신뢰를 형성하는 윤활유가 되며, 경직되기 쉬운 관계라도 우호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만든다. 이처럼 찬동의 원리는 즉각적이면서도 강력한 반응을 부르는 화법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칭찬받기를 좋아하나 정작 다른 사람의 장점을 말하는 데는 인색한 경향이 있다. 상대의 좋은 점을 발견해 그 사람에게 알려주기 위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을 걷어내고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말하더라도 단순히 입으로만 하는 칭찬은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진심이 전해져야 듣는 사람의 마음이 열린다.


겸양의 원리


‘겸양의 원리’는 자신을 높이는 말을 최소화하고 낮추는 말을 최대화하는 것, 즉 겸손한 태도로 말하는 화법이다. 겸손은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를 의미한다. 겸양의 원리를 지키지 않고 자기 자신을 높이는 말을 하면 상대에게 불쾌감과 반감을 불러오고,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결여되어 무의식적으로 공격적인 말을 내뱉을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높아지길 원한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스스로 높이면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은 낮아지게 되고, 그렇게 타인에 의해 낮아진 상대방은 자연히 불쾌감을 느낀다. 어떤 일을 잘해서 칭찬을 받거나 높아지는 상황이 되더라도 “덕분입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하며 성공의 공적을 다른 데 돌리며 스스로 낮추는 겸손의 미덕이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도록 도와준다.

대화할 때 상대방을 존중히 여기면 동시에 겸손해질 수 있다. 낮은 자세로 상대방의 얘기에 귀 기울이는 태도가 겸손의 시작이다.


동의의 원리


‘동의의 원리’는 상대방과 의견이 다를 때 일치하지 않는 표현을 최소화하고 일치하는 표현은 최대화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안건에 대한 의견을 냈을 때 ‘하지만’, ‘그런데’, ‘그렇지만’ 등의 표현을 사용해 단도직입적으로 부정하는 말을 내뱉는 건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매우 무례한 언사다. 상대방의 의견에 대한 반론이 설득력이 높다 하더라도, 직설적이고 강경한 표현으로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하면 설득이 어려워진다. 사람은 자신의 의견이 수용되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지녔기 때문에, 그 욕구를 충족시켜 줄 때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고 의견 차이를 원만하게 좁혀 서로가 만족하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의견을 효율적으로 전달하려면 동의의 원리를 지켜 말해야 한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전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군요”, “어느 정도 일리가 있군요” 하며 상대의 말을 긍정하며 공감을 표하는 것이다. 공감은 ‘상대의 입장에서 헤아려 봤을 때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동의의 원리를 지켜 상대의 말을 충분히 들어주고 진심으로 공감해 주면 ‘생각의 차이는 있지만 당신을 존중해요"라는 마음이 전달되고, 자신의 의견과 감정을 충분히 이해받은 상대방은 반대 입장을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영화 <꼬마돼지 베이브>에서 양치기 개는 양 떼를 몰기 위해 “이 멍청이들아! 주목해! 안 그럼 갈기갈기 찢어주겠어!”라며 소리친다. 무력과 강압으로 양들을 호령하는 개는 양들에게 혐오의 존재다. 반면 돼지 베이브는 부드러운 말로 공손히 부탁하고, “정말 잘했어요. 정말 고마워요”라고 칭찬하며 공손성의 원리를 지켜 양들을 인도한다. 이런 베이브의 태도에 양들은 진심으로 그를 좋아하게 되고, 베이브는 양을 모는 능력을 인정받아 주인에게 특별한 존재가 된다.

사람은 가정이나 학교, 직장과 같이 소속된 집단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좋을 때 행복을 느낀다. 인간관계는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고, 원하는 바를 말하며, 감정을 표현하는 등 의사소통을 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데, 관계를 좋게 하는 것도 관계를 해치는 것도 말에서 비롯된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화법을 사용해야 하는 이유도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은 결국 자신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므로, ‘공손성의 원리’는 행복하고 윤택한 삶을 꽃피우게 하는 양분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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