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만났을 때 느끼는 첫인상은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로 굳어져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짧은 순간 각인된 첫인상이 추후 관계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심리학에서는 그러한 현상을 ‘초두 효과’라고 한다. 초기에 제시된 정보 또는 느낌이, 나중에 알게 된 것보다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바를 의미한다.
영어 속담에 ‘시작이 좋으면 끝도 좋다(A good beginning makes a good ending)’는 말이 있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우리말 표현 역시 좋은 시작이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진다는 맥락을 통해 시작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시작이 중요한 건 대화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화의 문을 여는 첫마디에 따라 대화의 성패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말로 운을 떼느냐 하는 문제는 대화를 계속 이어나갈지, 혹은 중단시킬지를 결정짓는다. 대화는 상대가 있어야 성립된다는 점에서 서로 공을 주고받는 핑퐁과 같다. 탁구나 배드민턴이 즐거운 놀이가 되려면 내가 치기 쉬운 대로가 아니라 상대가 받기 쉬운 공을 주어야 하듯, 상대가 흔쾌히 받아들일 만한 말을 건네야 유쾌하게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유쾌한 대화를 위한 첫마디
① 밝은 인사
인사는 소통의 시작이자 대화의 첫 단계로, 친밀감을 나타낼 뿐 아니라 상호작용을 증진한다. 인사의 이면에는 ‘나는 당신을 존중합니다’, ‘당신과 대화할 마음이 있습니다’, ‘마음이 열려 있으니 다가와도 좋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으므로, 인사를 건네면 대화를 시작하기가 한결 쉬워진다.
인사는 환하게 미소 지으며 밝은 목소리로 해야 효과적이다. 잠자리에서 일어난 가족에게 “안녕히 주무셨어요?” “좋은 아침이에요” 하고 상냥하게 인사하면, 몽롱하고 가라앉은 기분에 자칫 예민해질 수 있는 아침을 활기차고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다. 일과를 마치고 귀가하는 가족에게 “추웠지(더웠지)?” “다녀오느라 고생했어요” 하고 반겨주면 집 분위기가 밝아져, 가족이 밖에서 있었던 일이나 느꼈던 감정을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다.
② 관심의 질문
가족 간이라도 평소 교류가 많지 않으면 어떤 말로 대화의 물꼬를 터야 할지 몰라 난감할 수 있다. 그럴 땐 가벼운 질문으로 답변을 유도하면 자연스레 대화가 시작된다. 사람은 자기에게 관심 가져주는 사람을 좋아하기 마련인데, 질문은 관심의 표현으로 전달되어 상대의 호감을 얻을 수 있다. 특히 상대의 관심사, 상대가 말하고 싶어 하는 소재로 질문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상대가 취조받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친절한 태도를 유지하되, 부정적인 대답이 나올 만한 질문은 피하는 것이 좋다. 긍정적인 감정을 일으키고, 긍정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어야 상대가 심리적으로 안정을 느끼고 대화에 적극 참여하게 된다. 질문한 뒤에는 상대의 말을 끊거나 대화의 흐름을 자신에게 가져오지 않도록 유의한다. 상대방의 대답을 경청하며 후속 질문을 이어가면 대화가 지속되어 점차 깊은 대화도 가능해진다.
③ 진심 어린 칭찬
칭찬은 상대방을 향한 애정을 표현하는 말이다. 칭찬을 들으면, 실제로 선물이나 상을 받았을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이 활성화된다. 사람들은 대부분 칭찬을 들으면 긍정적으로 반응하므로 대화를 우호적으로 시작할 수 있다. 칭찬은 단순히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할 뿐 아니라, 서로를 정서적으로 연결되게 하고 호감도와 상호 신뢰감을 높여 대화의 문을 활짝 여는 역할을 한다.
상대의 좋은 점을 찾아 구체적으로 말하면 칭찬의 말이 상대의 마음에 더욱 가닿는다. 상대의 장점을 발견하고 이를 인정하는 과정에서 상대를 이해하고 좋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기에, 칭찬하는 사람 역시 긍정적인 에너지를 경험한다. 혹 상대가 잘못한 점을 지적하거나 비판의 말을 해야 할 경우에도 상대의 좋은 점을 먼저 말하면 방어적인 태도를 낮춰 대화를 원만히 풀어갈 수 있다.
④ 따뜻한 수용의 말
상대방이 먼저 말을 걸어오거나 의견을 제시할 때, 그에 대한 나의 첫말은 대화의 흐름을 좌우한다. 상대가 나의 뜻과 다르게 말한다고 “아니”, “그런데”, “하지만” 하며 즉각 부정부터 하거나, 상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도 않고 무슨 말인지 알았다며 말을 끊으면, 그 말이 옳든 그르든 ‘이 사람은 내 말을 가치 있게 여기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 경험이 계속되면 더 이상 대화를 나눌 마음이 사라진다.
내가 동의하지 않는 의견이라 해도 상대가 그런 말을 하는 데는 제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그러므로 바로 받아치기보다는 우선 수용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먼저 수용하고 난 뒤 자기 생각을 말하면 소통이 한결 유연해진다. 사람은 자기 말이 받아들여지는 이에게는 뭐든 이야기해도 된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수용은 인정과 존중의 다른 표현이다. 상대를 존중하고 이해하며 열린 마음으로 대화를 이어가면 의미 있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 첫마디로 적절하지 않은 말
① “얼굴 안 좋아 보인다.”
사람은 상대의 말에 부응하려는 심리가 있어서, 얼굴이 안 좋아 보인다는 말을 들으면 실상 별일 없더라도 힘이 빠지고 신경 쓰인다. 정말 안 좋은 일이 있었다면 그 일이 연상되어 재차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 혹 상대방의 안색이 안 좋아 보인다면 부정적인 표현으로 단정 짓는 대신에 “오늘 어땠어?” “컨디션은 어때?”라며 담백하게 묻는 편이 낫다.
② “기분 나쁘게 듣지 마.”
이 말은 상대가 들으면 기분 상할 수도 있음을 인지하면서도 상대를 위해 말하겠다는 의미로, 상대가 느낄 감정까지 제한하는 말이다. 덧붙여 “다 널 위해 하는 말이야”라며 상대의 기분이 상하는 데 대한 책임도 회피한다. 실제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말이라도 이런 말로 운을 떼면 대화가 기분 좋게 흘러갈 리 없다. 상대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면 상대의 기분까지 고려해 직설적인 표현 대신 우회적으로 전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③ “왜 그랬어?”
사실관계를 확인하기도 전에 상대방에게 잘못이 있을 거라 단정 짓고 대화를 시작하면 상대는 비난받았다고 느낀다. 이에 자기방어를 하거나 공격적인 태도로 대화에 응하게 된다. 진위를 파악하기 전에는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이 사실이라 믿어서는 안 된다. 상대방의 의도나 생각이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를 수 있으니 섣불리 판단하는 대신 차근차근 물으며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첫말의 역할은 상대의 마음을 여는 것
어려운 말을 꺼내야 할수록 대화 초반에 공을 들여야 한다. 노스웨스턴대학교 리 톰프슨 박사는 실험을 통해, 협상에 들어가기 전에 긍정적인 대화를 나누면 만나자마자 협상을 시작할 때보다 원활히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분위기가 딱딱한 가운데 다짜고짜 본론부터 꺼내면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당장 본론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상황에 맞는 적절한 첫말로 훈훈한 분위기를 조성한 뒤에 대화를 나눠야 만족하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첫말의 역할은 상대의 마음을 여는 데 있다. 그러려면 ‘상대를 어떻게 기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특히 의견 차이가 있는 상황에서 첫마디는, 상대와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마음과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꺼이 협조하겠다는 의지가 전달되어야 한다. 상대가 기분 좋은 상태에서 대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심리적 안정감을 마련하는 것이다.
아무리 화가 나는 일이 있더라도 상대에게 건네는 첫말은 부드러워야 한다.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 서두를 꺼내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이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말이 부드럽게 나오지 않을 상황이라면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감정을 조절한 뒤에 첫마디를 꺼내는 것이 좋다. 내가 하고 싶은 말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상대가 감정을 지닌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상대의 마음을 고려할 때 대화의 출발이 순조로워진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얼른 씻고 숙제부터 해”라고 명령하거나, 퇴근하고 온 배우자에게 “왜 이제 와?” 하고 잔소리부터 하는 등 상대를 비난하거나 다그치는 첫마디는 그 의도가 사랑이든 걱정이든, 상대로 하여금 방어벽을 치게 하고 대립 상황을 조성한다. 가족이 바쁜 일과를 보내고 돌아온 시간은 한자리에 모여 대화를 나눌 기회인데, 거기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다.
사람은 상대방이 보이는 어조나 말본새와 똑같은 방식으로 응하려는 경향이 있다. 상대방의 어조가 딱딱하면 자신도 딱딱하게 대응하고,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면 똑같이 공격하게 된다. 인사, 질문, 칭찬, 수용 등 긍정적인 첫마디로 상대를 대화에 참여시키자. 상대방의 마음 문을 열고 나면 어떤 대화든 순조롭게 진행된다. 시작이 좋으면 마무리도 좋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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