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었니?”
“식사하셨어요?”
우리는 안부 인사로 상대방의 식사 여부를 묻곤 한다. 보릿고개로 식량 사정이 어려웠던 시절, 삼시세끼 챙겨 먹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때문에 밥을 먹었는지 서로 궁금해했던 것이 자연스레 인사말로 굳어졌다고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은 말한다. 인사말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가족의 상태를 밥으로 체크한다. 가족이 외출하고 돌아왔거나 집에 남겨졌을 때, 혹은 떨어져 사는 가족에게 통상적으로 물어보는 말이 밥은 먹었느냐다.
그도 그럴 것이 ‘먹기’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하는 여러 가지 활동 중 생명과 직결된 기본적인 활동이다. 먹는 일은 사람을 포함한 모든 살아 움직이는 동물들의 공통된 행위다. 생명체들이 거대한 먹이 사슬 아래 먹고 먹히면서 생태계가 유지된다. 초창기 인류의 역사를 이끌었던 동력도 먹는 일과 관련 있다. 먹기 위해 도구를 만들어 사냥하고 채집하며 농사를 지었다.
사람들은 ‘잘 먹고 잘 사는 게 최고’라고 말한다. 어려운 형편을 ‘먹고살기 힘들다’고 표현하며, 직업을 다른 말로 ‘밥벌이’라 한다. ‘살기 위해 먹느냐, 먹기 위해 사느냐’가 희대의 난제로 거론되기도 한다. 이처럼 먹는 일과 사는 일은 분리될 수 없다. 산다는 건 먹는다는 뜻이고, 먹는다는 건 산다는 뜻이다. 잘 먹는 것이 곧 잘 사는 일이다.
몸은 먹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몸은 먹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솔잎을 먹는 송충이는 솔숲에 살고, 댓잎을 먹는 판다는 대숲에 산다. 음식물 쓰레기에서 난 파리는 썩은 음식 주위를 맴돌고, 꿀을 먹는 꿀벌은 꽃밭을 맴돈다. 홍학은 게, 새우같이 카로티노이드라는 색소를 많이 함유한 먹이를 먹어서 몸이 붉고, 코알라는 독성이 있는 유칼립투스를 먹고 소화시키느라 잠을 오래 잔다.
동물의 먹이가 그것을 먹는 동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듯,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제 먹은 밥이 오늘의 내가 된다’, ‘내가 먹고 마시는 음식은 그 자체로 제2의 자아다’, ‘내가 먹은 음식이 피가 되고 살이 된다’, ‘당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말해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음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들이 과장스러운 속설이 아닌,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인체의 소화 과정이 이를 뒷받침한다. 음식을 입에 넣고 씹으면 음식이 잘게 조각나는 동시에 침이 분비되어 빠르게 분해된다. 삼킨 음식물은 식도를 따라 위장으로 내려가 위액을 통해 소화되고, 이어 소장으로 이동해 최종 분해되어 혈류에 흡수된다. 영양분이 혈액을 타고 신체의 다양한 조직과 장기로 운반되면 각 세포가 에너지를 얻어 활동함으로써 생명이 유지된다.
세포는 신체를 이루는 기본 단위로, 재생 주기에 따라 끊임없이 소멸하고 재생한다. 이 과정에 필요한 재료는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비타민, 미네랄 등인데 대부분 음식을 통해 공급된다. 인체는 음식을 먹고 마시는 행위를 통해 외부 영양분을 체내로 받아들여,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생성하고 적혈구와 체세포 그리고 장기를 만든다. 고로, 우리는 우리가 먹은 음식으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평생 하나뿐인 몸으로 살아야 한다. 몸을 주신 이는 부모지만, 그 몸을 소중히 여기고 건강하게 다루는 건 자신의 몫이다. 따라서 몸을 상하게 하는 일을 삼가고, 자기 몸에 들어갈 음식을 선택하는 데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먹는 것이 마음을 움직인다
음식은 우리에게 큰 기쁨을 준다. 먹는 즐거움이 없다면 인생을 무슨 낙으로 사느냐고 말할 정도다. 실제로 우리는 음식을 통해 여러 감각의 자극을 받는다. 다채로운 음식들로 차려진 식탁은 시각을 즐겁게 하고, 음식을 먹었을 때 입안에 퍼지는 풍미와 씹을 때 느껴지는 질감은 미각과 후각을 만족시킨다. 이러한 자극은 뇌의 보상중추를 활성화하여 행복과 즐거움을 느끼게 하고 스트레스를 줄인다.
음식을 먹는 행위 그 자체로도 기분이 좋아지지만, 섭취한 음식의 성분이 사람의 생각과 감정에 관여한다는 사실이 뇌과학을 통해 밝혀졌다. 사람의 감정은 신경전달물질의 영향을 받는데, 신경전달물질의 전구체1)는 체내에서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섭취한 음식으로부터 생성된다. 즉, 몸속으로 들어오는 음식물에 따라 뇌의 작동 방식이 달라진다. 특히,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며 정신 건강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세로토닌’은 주로 소화기관에서 분비되기 때문에 섭취하는 음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따라서 어떤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 기분이 달라질 수 있으며, 장기간 먹는 음식이 정신 건강을 좌우할 수 있다. 영국 정신건강 관련 자선단체인 마인드(Mind)는 우울증, 공황장애, 불안장애 등의 증세를 겪는 200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식단을 자연식으로 바꾼 사람 중 90% 정도가 증상이 호전되었다고 밝혔다. 어린이 4만여 명의 식단을 추적 조사한 노르웨이 아그데르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식단과 성격에는 명확한 연관성이 있으며 건강식을 먹고 자란 어린이들이 성실성, 개방성, 외향성, 자비심과 같은 특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미국의 정신의학자 드루 램지 박사는 “우리는 유전자를 통제할 수는 없어도 먹는 방법은 통제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매일 뇌 건강을 돌볼 수 있다”고 했다. 음식과 기분을 늘 연관 지어 인과를 따지며 살아가기는 어렵지만, 정신 건강을 생각한다면 우리의 몸만 아니라 마음 역시 먹는 음식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먹을까
음식물을 섭취하는 일이 하루 세 번 매일 반복되다 보니 더러는 식사가 해결해야 할 과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인생 자체가 먹고사는 일인 만큼, 살아가는 내내 ‘무엇을 어떻게 먹을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선 나와 우리 가족이 먹을 것을 어떤 기준으로 선택할지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약을 먹으면 병이 나을 거라는 생각은 해도 먹는 음식이 어떤 작용을 할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내가 먹는 음식에 무슨 영양분이 포함되어 있는지, 무슨 재료로 어떻게 조리했는지를 고려하지 않고 그저 맛있어서, 간편하다는 이유로 음식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패스트푸드, 인스턴트 식품이 건강에 이롭지 않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단맛, 짠맛, 지방맛을 적절히 조합해 입맛을 돋우는 정크푸드나 가공식품은 몸에 필요한 영양분은 없고 입만 즐겁게 할 뿐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마이클 폴란 교수는 그의 저서 《푸드룰》에서 “진짜 음식과 공장에서 만들어낸 새로운 물질을 구분하는 것만으로도 잘 먹기 위한 도전이 해결된다”고 했다.
몸에 좋은 음식은 생과일, 채소, 고기, 생선, 견과류와 같이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요리한 음식이다. 자연식품에는 필수 영양소인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비타민, 미네랄이 풍부하다.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간 균형 잡힌 식단으로 육체의 건강만 아니라 정서적인 안정감을 느낄 수 있으며, 이는 행복의 밑거름이 되어 삶의 질을 높인다.
어떤 음식을 먹느냐 못지않게 중요한 건 누구와 함께 먹느냐이다. 식사는 생존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인간관계 측면에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먹는 즐거움이 가장 크게 작용하는 때는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할 때다. 가족, 친구처럼 소중한 이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대화하는 자리는 기쁨과 행복을 만끽하게 할 뿐만 아니라 세상을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게 한다. 가족이 일주일에 3회 이상, 20분 정도 함께 식사하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더 건강해진다.2) 가족과 함께 먹는 음식은 단순한 음식의 차원을 넘어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만약 인간의 에너지원이 동물의 먹이나 자동차의 연료처럼 선택의 폭이 좁다면, 무엇을 먹을까 하는 고민은 사라지겠지만 그와 함께 먹는 행복도 사라질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인간은 맛과 향과 식감까지 다양한 음식을 먹는다.
인류의 터전인 지구는 거대한 식재료 창고와 같다. 산과 바다와 들에는 온갖 생물들이 가득하고, 기후와 지리에 따라 자연에서 얻는 다채로운 식재료들은 인간의 식탁을 풍성하게 한다. 그런데 이처럼 먹거리가 풍부하다 해도 인간에게 미각과 후각이라는 감각이 없다면 어떨까. 먹는 행복과 함께 삶의 행복마저 사라지고 말 것이다. 밥 한 숟갈, 과일 한 조각, 고기 한 점을 먹더라도 감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없는 신선하고 영양가 있는 식재료를 내어주는 대자연과, 그것을 거두기까지 수고하는 이들과, 산물을 다듬고 요리해 식탁 위에 차려낸 이에게, 맛과 향을 느끼게 하는 감각이 있음에, 가족과 함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음미하며 먹는 밥과 그냥 먹는 밥은 분명 다르다. 전자의 밥을 먹고 사는 이에게 ‘잘 먹고 잘 산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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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떤 물질이 생성되기 이전 단계의 물질. 트립토판은 세로토닌의 전구체이고, 타이로신은 도파민의 전구체이다.
2) Amber J. Hammons et al, “Is Frequency of Shared Family Meals Related to the Nutritional Health of Children and Adolescents?”, Pediatrics, Vol. 127(6),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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