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북극곰의 축제 준비


북극여우와 갈매기는 흐뭇한 표정으로 작업실을 둘러봤습니다. 커다란 고래, 무리 지어 선 펭귄, 이글루, 하트, 미끄럼틀… 여러 가지 모양의 얼음 조각품들이 작업실을 가득 채웠습니다. 모두 며칠 후에 열리는 얼음 조각 축제를 위한 작품들입니다.

“정말 수고 많았네. 이제 조각들을 전시장으로 옮기는 일만 남았어.”

축제의 총감독인 깐깐한 북극여우가 안경을 슬쩍 올리며 말했습니다. 조수인 갈매기는 벌써 축제가 시작된 것처럼 가슴이 콩콩 뛰었습니다. 일 년에 한 번, 북극의 가장 큰 빙하 위에서 펼쳐지는 얼음조각축제는 동물들이 매년 손꼽아 기다리는 축제입니다. 다양한 얼음 조각이 낮에는 햇빛, 밤에는 오로라 빛을 받아 반짝이는데 그 풍경은 실로 장관이지요.

“큰 조각들을 옮기려면 힘센 동물의 도움이 필요한데, 혹시 주변에 그런 친구 있나?”

북극여우의 질문에 갈매기는 가만히 친구들을 떠올려보았습니다.

“음… 북극곰이요! 덩치도 거의 빙하만 해요.”

갈매기가 두 날개를 한껏 벌리며 말했습니다. 북극여우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럼 북극곰에게 축제 준비를 도와줄 수 있는지 물어보게.”
“네!”

그날 저녁, 갈매기는 북극곰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얼음조각축제 얘기를 들은 북극곰은 얼마든지 도울 수 있다며 뛸 듯이 기뻐했지요. 둘은 다음 날 아침에 작업실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날이 밝아오자 갈매기는 작업실 앞에서 북극곰을 기다렸습니다. 잠시 후 멀리서 짐을 잔뜩 든 북극곰이 숨을 헉헉거리며 나타났습니다.

“잘 왔어. 그런데 그건 뭐야?”
“팥빙수 재료. 다 같이 팥빙수 만들어 먹자. 얼음은 작업실에 많이 있지? 헤헤.”
“음… 얼음이 있긴 한데, 감독님이 허락하실지는 모르겠어.”

북극곰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작업실로 따라 들어갔습니다. 조각을 살펴보던 북극여우는 갑작스러운 북극곰의 등장에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습니다.

“아이쿠, 깜짝이야!”
“안녕하세요, 조각 옮기는 걸 도와드리려고 온 북극곰이에요.”

북극여우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북극곰에게 악수를 청했습니다. 북극곰이 손을 세게 잡는 바람에 북극여우는 미간이 찌푸려졌지만, 힘이 센 만큼 일은 잘할 거라는 기대가 들었습니다. 북극곰은 여우에게도 팥빙수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우는 허허 웃다가 “바빠서 시간이 될지 모르겠네. 자네가 일하는 것을 봐서 정하지”라고 말했습니다.

조각 작품을 옮기려면, 눈이 쌓이는 것을 막기 위해 먼저 포장을 해야 합니다. 북극여우가 작품 포장하는 법을 알려주는 동안, 북극곰은 아침 일찍 일어난 탓에 깜빡 졸고 말았습니다.

“아니, 이렇게 중요한 내용을 설명하는데 잠이 오나?”

북극여우가 호통을 쳤습니다. 갈매기는 얼른 날개로 북극곰을 툭툭 건드렸습니다. 북극곰은 눈에 힘을 주고 잠을 깨려는 듯 주먹으로 무릎을 쳤습니다.

쨍그랑!


갈매기는 놀라서 숨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북극곰이 크게 휘두른 주먹에 큼지막한 얼음 블록 하나가 부딪쳐 깨진 것입니다. 북극여우는 숨을 크게 내쉬며 천천히 말했습니다.

“잠이 확실히 깼지? 이제 집중하게!”

설명을 다 들은 북극곰은 빗자루로 깨진 얼음을 쓸어 모았습니다. 그러다 바닥에 녹은 얼음물을 밟고 미끄러지면서 옆에 있는 다른 블록을 밀쳤습니다. 블록들은 도미노처럼 줄줄이 넘어졌습니다. 작업실은 순식간에 엉망이 되고 말았지요. 난처한 갈매기가 재빨리 수습에 나섰지만 북극여우는 굳은 표정으로 나가버렸습니다.

북극여우는 오후에 시작된 작품 운반 작업을 하면서도 내내 마음을 졸였습니다. 북극곰이 또 어떤 사고를 칠지 모르니까요. 북극곰은 침울한 얼굴로 자신이 방해만 되는 것 같다고 했고, 북극여우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갈매기는 둘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북극곰은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북극여우는 덜렁대는 북극곰이 탐탁지 않았지만, 갈매기의 입장을 생각해 북극곰의 실수들을 눈감아주었습니다. 그래도 작업은 예정대로 진행돼 마지막으로 축제의 백미인 궁전 모양 조각을 옮길 차례가 되었습니다. 동화 속 눈의 여왕이 살 것 같은 크고 아름다운 성이었습니다. 몇 개로 나뉜 조각을 옮긴 뒤 조립해야 하기에 일손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소식을 들은 이웃 마을 북극토끼들도 도우러 왔습니다.

중요한 작업을 앞두고 예민해진 북극여우는 모든 과정을 평소보다 꼼꼼하게 챙겼습니다. 그런데 북극곰이 성 조각 하나를 들어올리다 얼음 깃대를 미처 보지 못하고 부러뜨린 겁니다.

“자네, 이러면 정말 곤란하네. 이번이 몇 번째야?”

북극여우가 벌컥 소리쳤습니다.

“죄송해요….”

북극여우는 그동안 참았던 답답한 마음이 한꺼번에 터지고 말았습니다.

“자꾸 그러면, 그만하고 돌아가….”

그때, 어디선가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누가 좀 도와주세요!”

북극토끼들이 쌓여있는 얼음 블록을 옮기다, 블록 더미가 무너져 그중 한 마리가 깔린 것이었습니다. 다른 토끼들은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수북이 쌓인 얼음을 쉽사리 치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북극곰은 재빨리 달려가 얼음 조각들을 치웠습니다. 다른 동물이라면 서로 힘을 합쳐야 겨우 들 수 있는 얼음 블록을, 북극곰은 한 번에 두세 개씩 가볍게 들어 올렸습니다. 덕분에 얼음 블록에 깔린 토끼는 큰 부상 없이 몸을 털고 일어났습니다.

“감사합니다. 힘이 정말 세시네요!”
“우리 생명의 은인이에요!”
“아, 아니에요.”

볼이 빨개진 북극곰은 부끄러워하며 머리를 긁적였습니다. 그러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북극여우와 눈이 마주치자, 허둥거리며 얼음 블록들을 제자리에 다시 쌓았습니다. 화를 내던 북극여우는 그만 웃음을 짓고 말았습니다.

그날 이후, 사고뭉치로 통하던 북극곰은 힘센 영웅이 되었습니다. 북극여우는 조심히 다루어야 할 조각은 갈매기와 북극토끼들에게 맡기고, 북극곰에게는 큼직한 조각들만 골라서 옮기도록 했습니다. 북극곰은 자신에게 딱 맞는 일을 찾은 듯 실수가 많이 줄었습니다. 큰 조각을 번쩍 들었다 놨다 해서 북극여우를 놀라게 하는 건 여전했지만요.



마침내 얼음조각축제가 열리고, 근사한 얼음 조각들이 빙하 위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갈매기와 함께 축제에 간 북극곰은 잘 모르는 여러 동물들이 자기에게 인사를 건네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그러다 얼음 궁전 앞에서 자기를 똑 닮은 북극곰 조각상을 봤습니다.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갈매기를 바라봤습니다. 사실 그 조각은 토끼들이 북극여우에게 특별히 부탁해 만든 것이었습니다.

“토끼들과 감독님의 깜짝 선물! 이 큰 조각을 너 없이 옮기느라 고생 좀 했어, 다들.”

갈매기의 말을 들은 북극곰의 볼이 발그레 물들었습니다.

축제의 마지막 날 밤, 손님들이 모두 돌아가고 난 후 북극여우는 축제를 성공적으로 연 것을 축하하는 파티를 열었습니다. 이날의 메뉴는 팥빙수! 북극곰이 첫날 가져왔던 재료가 풍족해 모두들 마음껏 먹고도 남았습니다.

“팥빙수가 정말 맛있네요. 누가 준비한 거예요?”
“누구긴요, 저기서 열심히 얼음 갈고 있는 북극곰이죠.”

북극토끼의 질문에 갈매기가 답했습니다.

“처음 작업실에 올 때, 다짜고짜 팥빙수 재료를 가져왔지 뭔가!”

북극여우가 어이없는 상황을 장난스럽게 말해 박장대소가 터졌습니다. 그때,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얼음 가는 기계 손잡이가 부러졌습니다. 북극곰이 힘 조절을 잘못한 것입니다. 북극여우는 꼼꼼한 솜씨로 손잡이를 붙여주며 말했습니다.

“자네, 내년에도 작품들을 열심히 옮기려면 그 넘치는 힘 좀 아껴두게. 알겠나?”
“내년에도 불러주시는 거예요? 와, 감사합니다!”

북극곰의 환호에 동물들도 기뻐했습니다.

다 함께 즐거운 시간, 때마침 펼쳐진 오로라에 얼음 조각들이 오색 빛으로 물들며 북극의 밤은 깊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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