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덕푸드덕!
집배원 비둘기가 편지를 가득 담은 가방을 메고 맑은샘 마을을 향해 날아가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숲으로 둘러싸여 마을 어귀에서부터 상쾌한 나무 향이 솔솔 나는 곳입니다. 비둘기는 배달 담당 구역 중 맑은샘 마을을 제일 좋아합니다. 마을 한가운데 옹달샘이 있어 오다가다 시원하게 목을 축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샘을 지키는 사슴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재미있고요.
얼마쯤 갔을까요,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주위가 어두워졌습니다.
‘비가 오려나? 얼른 가야겠다.’
마음이 급해진 비둘기는 더욱 힘차게 날갯짓을 했습니다. 마을에 도착하자 하늘은 초저녁처럼 어둑어둑했습니다. 배달을 마칠 즈음, 머리에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졌습니다. 비둘기는 옹달샘에 들르지 못하고 서둘러 우체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날 저녁부터 맑은샘 마을에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습니다. 장대비가 며칠 동안 쉼 없이 내려, 동물들은 꼼짝없이 집 안에서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비가 그치고 며칠 만에 집 밖으로 나온 동물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길 곳곳이 움푹 팼고 나무들이 뿌리를 드러낸 채 쓰러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옹달샘에 있었습니다. 사시사철 맑은 물이 솟아나던 마을의 자랑, 옹달샘이 온통 진흙으로 덮여버린 것입니다.
마을 대표인 올빼미가 곧바로 긴급회의를 열었습니다. 옹달샘 옆 느티나무 아래 모인 동물들은 모두 근심이 가득한 표정이었습니다.
“마을을 복구하기 위해 우리가 힘을 모아야 합니다.”
올빼미의 말에 토끼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습니다.
“저는, 다른 것도 문제지만 옹달샘부터 되살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동물들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토끼는 말을 이었습니다.
“샘지기인 사슴이 이 일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어떻게 샘이 저 지경이 되도록 내버려둘 수 있죠?”
“제가 큰 비가 오기 전에 샘가에 담을 쌓자고 했는데, 다들 반대했잖아요. 이제 와서 왜 저를 탓하는 거죠?”
사슴이 따지듯 물었습니다. 그러자 원숭이가 나섰습니다.
“그건 건축업자인 비버가 담 쌓는 데 터무니없는 값을 불러서 예산상 어쩔 수 없었던 거고요.”
이번에는 비버가 발끈했습니다.
“터무니없다니! 요즘 자재 구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고 하는 소리요?”
회의장은 순식간에 웅성웅성하는 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올빼미가 동물들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동물들은 그렇게 옥신각신 서로의 탓만 하다 헤어졌습니다.
그날 이후, 맑은샘 마을에는 어색함이 감돌았습니다. 동물들은 자기 집 마당만 치우고 다른 곳은 내버려두었습니다. 쓰러진 나무를 일으키고 길을 메꾸려면 서로 힘을 모아야 하는데, 마음이 썩 내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옹달샘도 여전히 진흙으로 덮여 있어서 물을 구하려면 산 아래 강까지 가서 직접 떠 와야 했습니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지요.
우편물을 들고 오랜만에 맑은샘 마을을 찾은 비둘기는 달라진 마을의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상쾌한 향을 뿜던 나무들은 곳곳에 쓰러져 있고, 옹달샘이 있던 자리엔 흙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으니까요. 비둘기는 샘지기 사슴을 찾아가 어찌 된 일인지 물었습니다. 사슴은 지난 회의에서 있었던 일을 알려주었습니다.
“… 여하튼 혼자서 샘을 덮은 흙을 치워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에요. 힘센 누군가가 도와주면 모를까. 내일 회의에서는 무언가 대책이 나와야 할 텐데, 걱정이에요.”
사슴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비둘기는 사슴의 어깨를 날개로 다독여주었습니다.
“힘을 내요. 다 방법이 있을 거예요.”
우체국으로 돌아온 비둘기는 어떻게 하면 맑은샘 마을을 도울 수 있을까 궁리하며 배달할 편지 더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습니다. 그때 좋은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래, 이렇게 하면 되겠다!’
비둘기는 서랍에서 편지지 묶음과 만년필, 잉크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편지지에 무언가를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적기 시작했습니다.
「사슴에게.
지난 마을 회의 때 무작정 탓해서 미안해요. 옹달샘은 마을의 모든 동물이 함께 돌봐야 할 보물인데, 저부터 그렇게 하지 못했어요. 언제나 든든하게 샘을 지켜주셔서 감사해요. 우리 함께 힘을 모아, 옹달샘에서 다시 맑은 물이 퐁퐁 솟아나게 만들어요.」
비둘기는 사슴에게 보내는 편지를 시작으로 마을 동물 모두에게 사과 편지를 썼습니다. 물론 발신자 칸은 비워두었지요. 원숭이에게는 비버의 입장에서 ‘벌컥 화를 내서 미안하다’는 편지를 쓰고, 비버에게는 원숭이의 입장에서 ‘사정을 헤아려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맑은샘 마을로 배달 가는 날, 비둘기는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마을 동물들이 잠에서 깨기 전에 편지를 배달하려고요.
아침에 신문을 챙기러 나간 사슴은 우편함에서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누가 편지를 보냈을까?’
조심스레 봉투를 열어 편지를 확인한 사슴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토끼가 보냈나 보구나. 나도 샘지기로서 옹달샘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잘못이 있는데 먼저 사과해주다니, 참 고마운 일이야.’
사슴은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회의에 갈 채비를 했습니다. 다른 동물들의 집에도 발신자 없는 편지가 배달됐습니다. 동물들은 편지를 읽고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았습니다. 무턱대고 화를 냈던 모습, 다른 동물을 탓했던 모습이 떠올라 부끄러웠습니다.
그날 오후, 느티나무 아래서 또다시 마을 회의가 열렸습니다. 올빼미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지난 회의가 흐지부지 끝난 것은, 회의를 제대로 이끌지 못한 제 탓이 큽니다. 죄송해요. 오늘은 꼭 마음을 하나로 모아봅시다.”
그 말을 들은 비버가 머리를 긁적였습니다.
“저는 지난번에 너무 발끈했던 것 같아요. 오늘은 성미를 좀 가라앉히고 겸손한 자세로 임할게요.”
“저야말로 모두에게 미안합니다. 여러분의 충고를 못마땅하게 여겼으니까요. 샘지기로서 더 열심히 할게요.”
사슴의 말에 토끼가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 말했습니다.
“흠흠. 제일 먼저 사슴 탓을 했으니, 저야말로 잘못했죠.”
동물들은 너도나도 서로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회의는 물 흐르듯 진행돼, 당장 옹달샘을 되살리고 샘가에 담을 쌓기로 했습니다. 비버는 발품을 팔아 값싸고 좋은 자재를 구해 오겠다고 약속했고, 원숭이와 힘센 곰이 힘을 합쳐 샘을 덮은 흙을 치우기로 했습니다. 발이 빠른 토끼는 심부름이 필요할 때 돕기로 했고요. 사슴은 모든 과정을 지휘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맑은샘 마을은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말끔해진 옹달샘에서 다시 맑은 샘물이 솟아났고, 새로 쌓은 담 옆에 아담한 정자도 세워졌습니다. 편지를 배달하러 마을을 찾은 비둘기는 마을의 변화를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습니다. 몇몇 동물들이 얼마 전에 온 사과 편지를 누가 보낸 것인지 아느냐고 물었지만, 비둘기는 시치미를 뚝 떼고 모른다고 답했습니다. 흐뭇한 표정을 감추느라 좀 힘들었지만요.
기분 좋게 배달을 마친 비둘기는 목을 축이러 옹달샘으로 향했습니다. 샘가에서 동물들이 두런두런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비버 사장님은 뭘 좋아할까요?”
“글쎄요… 물고기였나? 아, 숲에서 나는 걸 드신댔어요. 이를테면 산딸기요!”
“마침 집에 맛있는 산딸기가 있어요. 그걸로 파이를 만들어 올게요.”
동물들은 다음 주에 열릴 마을 잔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비 피해를 입은 마을을 무사히 복구한 것을 자축하는 자리인 만큼, 음식을 넉넉히 차릴 계획입니다. 모두들 서로가 좋아하는 음식을 해주고픈 마음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요리를 하나씩 맡아 해오기로 했습니다. “이러다 잔칫날 상다리 휘어지겠다”는 토끼의 말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마을에서 잔치가 열리나 봐요?”
비둘기의 목소리에 동물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원숭이가 주머니에서 초대장을 꺼내 내밀자, 비둘기는 한쪽 날개를 접고 고개를 한껏 숙이며 정중히 받았습니다. 비둘기의 과장된 몸짓에 또 한바탕 웃음이 터졌습니다. 동물들의 활짝 웃는 얼굴이 샘물에 환하게 비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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