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휘와 엄마의 시장 나들이


“다녀왔습니다.”
“두휘 왔니?”
“언니, 나 새 옷 샀어.”

두휘가 현관에 들어서자 분홍색 카디건을 입은 세빈이가 달려 나와 반겼습니다. 엄마는 시장에 갔더니 아이들 옷을 싸게 팔아서 하나 샀다고 했습니다. 새 옷을 입고 활짝 웃는 세빈이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동화 속 꼬마 공주님 같았습니다.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머리가 하늘까지 닿겠네~♬”

동요를 부르며 폴짝폴짝 뛰는 세빈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에서 하트가 뚝뚝 떨어지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두휘는 엄마가 세빈이 옷만 사왔다는 사실에 기분이 언짢았습니다.

“새 신을 신고 뛴다고 머리가 하늘까지 닿겠어? 그리고 엄마가 사준 건 신발이 아니라 옷이잖아!”

방으로 들어가며 세빈이에게 톡 쏘듯 말하는 두휘. 세 자매 중 둘째인 두휘는 초등학교 6학년입니다. 언니 하민이는 중학생이고, 세빈이는 두휘보다 한참 어린 여섯 살입니다. 언니, 동생과 잘 어울리던 두휘는 요즘 사춘기가 왔는지 부쩍 예민해졌습니다.

온 가족이 모인 저녁, 다 같이 저녁을 먹으려고 자리에 앉았을 때 엄마가 두휘를 불렀습니다.

“두휘야, 물 좀 갖다 줄래?”

두휘는 일부러 엄마 말을 못 들은 척했습니다. 엄마가 한 번 더 부르자 두휘는 버럭 짜증을 내며 대답했습니다.

“왜 나한테만 시키는데? 언니랑 세빈이도 있잖아!”
“네가 냉장고랑 제일 가까이 있어서 부탁한 거지. 미안해. 얼른 밥 먹어.”
“너 엄마한테 왜 그래?”

엄마는 두휘를 다그치는 하민이에게 그만하라는 의미로 눈을 찡긋하고는,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며 분위기를 바꾸려 화제를 돌렸습니다. 그러자 두휘에게 한마디 하려던 아빠도 입을 다물었습니다.



저녁 식사 후, 하민이가 가방에서 수학 문제집을 꺼내어 거실에 있는 아빠에게 가져갔습니다. 모르는 문제가 있어서 수학 선생님인 아빠에게 물어볼 참이었습니다. 아빠는 하민이와 문제집을 풀고, 엄마는 세빈이와 한글 공부를 했습니다. 소파에 앉아 있던 두휘는 왠지 소외감이 느껴져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고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 갑자기 몸을 일으켰습니다.

“아, 현장 학습!”


내일은 미술관으로 현장 학습을 가는 날입니다. 두휘는 어떤 옷을 입고 가야 할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친구들과 사진도 찍을 거라 아무 옷이나 입고 갈 수는 없었습니다. 옷장을 열어 이 옷 저 옷 꺼내 거울에 비춰보기도 하고 서랍장을 열어보아도 딱히 마음에 드는 옷이 없었습니다. 대부분 언니에게 물려받은 옷들이라 자신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두휘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습니다. 게다가 오늘 새 옷을 입고 신나 하던 세빈이의 모습이 떠올라 더 우울해졌습니다.

“아니, 두휘야! 방이 이게 뭐니?”

함께 과일을 먹으려 두휘를 부르러 온 엄마가 침대에 널려 있는 옷들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두휘는 아까부터 눌러왔던 설움이 폭발했습니다.

“엄마 아빠는 언니랑 동생만 좋아하잖아. 나는 언니한테 물려받은 옷밖에 없는데, 내 옷은 사주지도 않고. 나한테는 관심도 없잖아! 엉엉!”

불만을 쏟아내며 울음을 터뜨리는 두휘를 보며 엄마는 무척 당황했습니다.

그날 밤, 부모님은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우리 딴에는 세 아이 모두 소중히 여기고 공평하게 사랑을 주려고 노력하지만, 아이들은 서로를 비교하기도 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로 서운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두휘가 하민이랑 나이 차이가 얼마 안 나 옷을 많이 물려 입긴 했어요. 세빈이는 딱히 물려 입힐 것이 없어 하는 수 없이 철마다 사주었는데, 두휘 입장에서는 그게 상처가 됐던 것 같네요.”
“이번 휴일에 내가 하민이랑 세빈이 데리고 집에 있을 테니까 당신이 두휘 데리고 나가서 옷 한 벌 사줘. 맛있는 것도 사주고.”

엄마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며칠 후 맞이한 휴일, 엄마가 두휘를 데리고 집을 나섰습니다.

“오늘은 엄마랑 둘이서 재밌게 놀다 오자.”
“언니랑 세빈이는?”
“아빠랑 집에 있을 거야.”

두휘는 얼떨떨하면서도 기분이 설렜습니다. 엄마와 두휘가 도착한 곳은 엄마가 가끔 들르는 재래시장이었습니다. 두휘는 엄마를 따라 시장에 종종 오긴 했지만 평소에는 엄마가 찬거리만 사서 집에 돌아가기 바빴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여유 있게 시장 구경을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시장 입구에 들어서자, 진열된 튀김과 떡볶이가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분식집이 먼저 반겼습니다.

“우리 떡볶이랑 튀김 먹을까?”

엄마가 두휘 팔을 당겼습니다. 엄마가 해주는 떡볶이 맛보다는 못하지만 엄마랑 둘이서 먹는 점심은 꿀맛이었습니다. 두휘는 앉은 자리에서 떡볶이와 튀김 한 접시를 뚝딱 비웠습니다.

시장에는 채소, 과일, 생선 등 없는 게 없었습니다. 두휘는 살아 있는 낙지를 구경하기도 하고, 큰 목소리로 과일을 파는 아저씨를 흥미롭게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떡집을 지날 때 엄마는 아빠가 떡을 좋아하신다며 떡도 사고, 하민이와 세빈이가 좋아하는 한과와 전병도 샀습니다.

두휘는 신기한 물건들이 많은 가게를 발견했습니다. 오래된 전자 제품과 골동품을 밖에 내다놓고 파는 가게였습니다.

“엄마! 이것 봐요. 전기 레인지가 특이하게 생겼어요.”

엄마는 두휘가 가리키는 물건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건 레코드라는 거야.”

두휘는 수업 시간에 배운 레코드판을 눈으로 직접 보니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엄마는 레코드판 외에도 요즘은 골동품이 된 다이얼 전화기, 타자기 등을 두휘에게 하나하나 설명해주었습니다.

골동품 가게를 나온 뒤에는 스티커 사진을 찍는 가게에 들렀습니다. 친구와는 스티커 사진을 여러 번 찍어봤지만 엄마와는 처음이었습니다. 두휘는 여러 색깔의 가발과 안경, 머리띠 등을 가져와 엄마에게 어떤 게 어울리는지 봐주었습니다. 우스꽝스러운 소품 덕분에 엄마와 두휘는 한참을 웃었습니다. 그러다 하트 모양의 분홍색 안경이 보이자, 두휘는 언니가 쓰면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쪽으로 땋은 머리 모양의 가발을 보고는 세빈이가 생각났습니다. 다음번에는 언니와 세빈이랑도 같이 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인화된 스티커 사진을 보며 길을 걷다 옷 가게가 나오자, 엄마는 두휘를 데리고 옷 가게로 들어갔습니다.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르라는 엄마 말에, 두휘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가게 안을 다니며 이 옷 저 옷을 살폈습니다. 그러나 막상 옷을 사려니 어떤 걸 골라야 할지 무척 고민되었습니다. 보다 못한 엄마가 옷깃에 레이스가 달린 티셔츠와 멜빵 치마를 골라주었습니다. 두휘는 엄마가 골라준 옷이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엄마는 옷에 어울리는 머리 끈도 사주겠다며 두휘를 액세서리 파는 좌판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머리 끈을 고른 두휘는 리본이 달린 핀과 하늘색 가죽 팔찌를 양손에 들며 말했습니다.

“엄마, 이것도 사주시면 안 돼요?”

엄마는 두휘가 욕심을 부리는 것 같아 내심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왕 두휘를 위한 날로 작정한 만큼 끝까지 기분을 맞춰주자는 생각에 핀과 팔찌도 사주었습니다. 그렇게 엄마와 데이트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두휘의 발걸음은 날아갈 듯 가벼웠습니다.

“아빠, 언니, 세빈아!”

두휘가 현관에서 큰 소리로 가족들을 불렀습니다. 콩콩거리며 달려 나온 세빈이가 자랑하듯 말했습니다.

“아빠가 점심 때 오므라이스 해줬는데 되게 맛있었어.”
“진짜? 아빠가 오므라이스를?”

두휘가 놀라며 묻자 엄마가 말했습니다.

“너희 아빠 오늘 실력 발휘 제대로 하셨나 보다.”
“엄마! 아빠랑 언니가 청소까지 했어. 엄청 깨끗하게.”
“와, 집이 새 집 같네!”

엄마는 아빠와 하민이에게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칭찬을 거듭했습니다. 두휘는 시장에서 산 떡과 한과, 전병을 쟁반에 담아 왔습니다. 그 모습을 본 하민이가 “오!” 하고 감탄했습니다.

“오늘 엄마랑 재미있었니?”

아빠의 질문에 두휘는 시장에서 있었던 일을 재잘대며 말했습니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작은 봉지를 꺼냈습니다.

“짜잔! 이건 언니 거, 이건 세빈이 거.”

두휘는 하민이에게 하늘색 가죽 팔찌를, 세빈이에게 리본 핀을 건넸습니다.

“언니랑 동생 주려고 사달라 한 거였어?”

고개를 끄덕이는 두휘의 모습에 엄마와 아빠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우리도 언니한테 줄 거 있어.”

세빈이가 두휘의 팔을 끌고 주방으로 갔습니다. 식탁보를 젖히자 통통한 오므라이스가 노란 계란 옷을 입은 채 접시에 담겨 있었습니다. 오므라이스 위에는 삐뚤빼뚤하게 하트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언니랑 엄마 주려고 남겨놓은 거야.”
“세빈이가 하트도 그렸어.”

거실에 있던 하민이가 거들었습니다. 두휘는 엄마와 함께 식탁에 앉아 오므라이스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하민이는 새 팔찌가 마음에 드는지 팔에 차고는 이리저리 돌려보았고, 세빈이도 머리핀을 머리에 꽂아보았습니다.

“두휘야, 아빠 건 없니?”

아빠가 일부러 서운한 표정을 짓자, 두휘가 깜짝 놀라는 표정을 과장되게 지으며 말했습니다.

“다음엔 아빠 것도 꼭 사올게요.”
“엄마, 언니!”

머리핀을 꽂고 주방으로 달려온 세빈이가 빙그르르 돌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두휘가 웃으며 노래를 따라 불렀습니다.

“머리가 하늘까지 닿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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