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사진첩

얼마 전 동생이 아빠에게 새 휴대폰을 택배로 보내드렸습니다. 새 휴대폰을 개통해 기존 휴대폰에 있던 정보를 옮기는 일은 제가 도와드리기로 했지요. 연락처, 앱, 메시지 등 여러 정보를 옮기던 중 사진첩을 본 저는 내심 놀랐습니다.

강을 노니는 오리들, 예쁘게 물든 저녁노을, 눈 쌓인 동네, 취미 삼아 만든 여치 집, 귀여운 손자, 마당에 핀 꽃, 정성 들여 키운 농작물….

아빠가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은 몇 안 되지만 하나하나 감성을 가득 품고 있었습니다.

아빠는 힘들어도 “힘들다” 말하지 않고, 아파도 “아프다”는 말 한번 하지 않으셨습니다. 맛있는 것을 먹어도, 예쁜 것을 보아도 무심히 넘기셨습니다. 그저 말없이 흘러가는 물처럼, 늘 그 자리에 있는 산처럼 아빠의 표정은 언제나 똑같았고 어떤 일에도 크게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빠가 좋아하는 것도, 즐거워하는 일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빠는 제가 생각했던 모습과 다르다는 걸 사진첩이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아빠도 아름다운 것을 보면 감동하고, 예쁜 것을 보면 예쁘다고 느끼고, 작고 앙증맞은 것을 보면 귀여워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저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죠. 마음은 표현하지 않는다고 줄어들거나 없어지는 게 아닌데, 아빠를 감정 없는 사람으로 생각했던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빠가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입니다. 그날 이후로는 아빠가 슬퍼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가장의 무게를 감당하느라 당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못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버팀목을 잃어버리고 스스로 버팀목이 되어야 했기에 여린 감정을 꼭꼭 숨겼는지도 모릅니다.

아빠의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아빠가 휴대폰을 꺼내어 카메라 촬영 버튼을 누르던 순간의 그 맑고 순수한 마음으로 가족을 사랑했음을. 아빠의 마음속 사진첩에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가족과 함께한 순간들이 남아 있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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