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샀던 날

스무 살이 되던 해, 구두를 사러 엄마와 함께 백화점에 갔다. 딸이 처음으로 장만하는 구두를 좋은 것으로 해주고 싶었던 엄마는 이 구두 저 구두 살피며 성심껏 골라주셨다. 운동화나 단화도 모양에 따라 맞는 사이즈가 다른데, 심지어 구두는 처음이라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예쁜 구두는 발이 조이고, 굽이 높은 구두는 신고 걷기가 힘들었다. 결국 굽이 낮고 편한 구두를 골랐다.

그날 퇴근하신 아빠에게 새로 산 구두를 자랑했다. 이제 어른이 되었다는 아빠 말에 기분이 좋아져, 아빠에게 구두 신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매장에서 신었을 때와 달리 구두가 커서 헐거웠다. 매장에서 맨발로 신었을 때는 구두가 발에 맞았는데 스타킹을 신었더니 구두가 큰 것이었다. 교환하러 다시 가야 한다는 생각에 볼멘소리가 나왔다.

그렇게 투덜거리고 있을 때, 현관에 벗어놓은 아빠의 구두가 눈에 들어왔다. 오래되어 낡은 구두였다. 10년은 신은 듯한 아빠의 구두를 보니 볼멘소리가 쏙 들어가고 아빠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정작 새 구두가 필요한 사람은 아빠였으니까.

아빠 구두를 새로 사야겠다고 했더니, 아빠는 오히려 언니에게 구두를 사라고 말씀하셨다. 당신은 아무것도 필요 없다면서.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는 아빠. 아빠의 수고와 희생을 헤아리지 못하는 철부지였는데, 이제 다 컸다며 기특해하시니 죄송할 뿐이었다. 진정한 어른이 되려면 아직도 한참 남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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