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청국장

어릴 적, 쌀쌀한 초겨울 바람이 불어올 즈음이면 우리 집은 고릿한 냄새로 가득 찼습니다. 냄새의 근원은 방 한구석 따뜻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청국장이었습니다. 존재감이 강한 청국장 냄새는 집에 있을 때만 아니라 밖에 나갔을 때도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하루는 옷에 밴 청국장 냄새 때문에 짓궂은 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받았습니다. 분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니 역시나 청국장 냄새가 코를 훅 찔렀습니다. 친구들에게 놀림당한 게 엄마 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일을 마치고 온 엄마에게 버럭 화를 냈습니다.

“엄마, 청국장을 왜 집에서 만들어요? 냄새난다고 애들이 놀리잖아요!”

그해를 끝으로 엄마는 더 이상 집에서 청국장을 띄우지 않으셨습니다. 사실, 저는 엄마가 만든 청국장을 참 좋아했습니다. 뚝배기에 갖가지 야채를 끓여 낸 육수에 엄마표 수제 청국장을 풀어서 만든 찌개는 깊은 감칠맛의 세계를 알게 해주었습니다. 그 황홀한 구수함은 청국장을 띄우는 동안 냄새로 고통받던 기억을 잊게 할 정도였지요.

성인이 되어 그 고릿한 냄새가 그리워 시판용 청국장으로 찌개를 끓여 봤지만 어릴 때 엄마가 만든 청국장 맛이 나지 않았습니다. 명인이 만들었다는 청국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엄마, 요즘 청국장은 왜 밋밋하지? 옛날에 엄마가 해준 건 고릿고릿하고 구수했잖아요.”

“요즘에는 그런 냄새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더라. 그 냄새가 이젠 그리우냐?”

그렇다고, 엄마가 만든 청국장이 먹고 싶다고 하자, 엄마는 ‘딸이 먹고 싶다면 해줘야지’ 하셨습니다. 그러고는 며칠 지나지 않아 청국장을 만들었다며 저를 집으로 부르셨습니다. 옛날 방식 그대로 띄우지 않아서인지 짙게 발효된 향은 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명인의 청국장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엄마의 손으로만 낼 수 있는 고유의 맛이 마음속까지 스며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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