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황#1
남편이 퇴근길에 치킨을 사러 갔다. 그런데 아내가 좋아하는 치킨집이 문을 닫았다. 다른 치킨집을 찾아갔더니 주문이 밀려 한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또 다른 가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남편은 배고픈 채로 자신을 기다릴 아내를 생각해 뭐라도 빨리 사 가야겠다 싶어 만두를 샀다. 아내와 먹을 생각에 즐거운 기분으로 집에 들어섰는데, 아내는 실망한 표정이다. 아내는 자신이 만두를 안 좋아한다는 사실을 잊은 남편에게 서운했다. 남편은 남편대로 치킨집을 찾아다니느라 애쓴 줄도 모르고 만두를 떨떠름하게 보는 아내가 야속했다.
상황#2
타지에 사는 두 아들이 부모의 농사일을 돕기 위해 시골집을 찾았다. 장남은 전날 도착해 이튿날 이른 새벽부터 일을 시작했고, 차남은 전날 늦게 퇴근하고 다음 날 알람 소리를 듣지 못해 정오쯤 도착했다. 차남은 미안한 마음에 점심으로 갈비탕을 대접하겠다고 했다. 장남은 굳이 읍내에 있는 식당까지 갈 것 없이 집에서 먹기를 원했는데, 부모님이 동생의 제안대로 식당에 가자고 하니 내심 서운했다.
서운한 감정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상대방이 나를 배려하지 않거나 마음을 알아주지 않을 때 발생하는 감정이 서운함이다. 그런 감정이 느껴지면 우리는 ‘상대가 나를 실망스럽게 했어. 서운하게 만들었어’라며 감정의 원인을 상대 탓으로 돌리곤 한다. 하지만 내면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 감정은 상대가 준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든 기대에서 비롯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상황#1의 아내와 남편에게는 각각 ‘내가 만두를 안 좋아한다는 사실을 남편이 기억해야 한다’, ‘아내가 원한 치킨은 아니지만 어렵게 만두라도 사 왔으니 맛있게 먹어주어야 한다’는 기대가 있다. 상황#2의 장남에게는 ‘내가 일을 많이 했으니 부모님이 나를 더 위해주어야 한다’는 기대가 마음속에 은근히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함께한 시간이 쌓이고 친밀한 관계를 맺다 보면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알아서 자신을 흡족하게 해줄 거라 믿는다. 이 믿음이 서로를 향한 기대치를 형성한다. 그런데 때로는 자신의 기대를, 바람이나 희망을 넘어 상대가 마땅히 해야 하는 기준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러한 기준을 스스로 만든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상대가 내 기준에 동의한 적 없고, 내 기준이 늘 보편적이거나 상식적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깨어지는 순간 우리는 원망하고 분노한다. 서운한 감정이 들면 사실을 왜곡하기 쉽고, 왜곡된 생각은 서운한 감정을 걷잡을 수 없이 키운다. 아내가 만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남편이 깜빡했을 뿐인데 아내는 남편의 사랑이 식었다고 확대해석하거나, 장남이 자신은 일찍부터 일했는데 일하지도 않은 동생을 부모님이 편애한다고 곡해함으로 괴로움이 가중되는 것이다.
서운한 감정, 서운하다는 말
가까운 사람에게서 서운함을 느낄 때 우리는 내적 갈등에 휩싸인다. 별것 아닌 일을 언급하자니 속 좁은 사람이 되는 것 같고,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자니 생각처럼 쉽게 잊히지 않는다. 객관적으로 상대가 서운함을 느끼게 할 만한 말과 행동을 했든, 자신이 별거 아닌 일을 크게 받아들이든, 서운함을 느꼈다면 서운한 것이 맞다. 그 감정을 애써 부정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섭섭한 감정을 다루는 방식이다. 말하지 않으면 상대가 모를 거라는 생각에, 혹은 대화로 풀겠다는 마음에 섣불리 서운함을 토로했다가는 오히려 관계가 불편해질 수 있다. 더구나 서운함을 느끼는 사람은 이미 상대가 잘못했다는 전제하에 말하기 쉽고, 그렇게 되면 아무리 부드러운 투로 말하더라도 상대에게는 좋게 들리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서운함의 표현이, 듣는 사람에게는 변화를 요구하는 뜻으로 전해져 그런 말을 들은 후부터는 말과 행동에 제약이 걸린다. 상황#2의 장남이 부모에게 서운한 마음을 표현한다면 부모는 그때부터 장남의 눈치를 볼 수 있다. 세심하게 대하지 않으면 또 서운함을 안겨주게 될까 봐 우려스러운 것이다. 그러므로 상대에게 자신의 감정에 대한 책임을 묻는 건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한다.
물론 서로 약속한 일, 상대가 하겠다고 한 일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는 대화가 필요하다. 상황#1과 같이 부부 사이에도 각자의 생각과 감정을 터놓고 얘기하는 편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서운한 감정을 호소하는 횟수가 너무 많고 자신에게 끊임없이 맞춰주기만을 바라면 자칫 불만이 가득한 사람이 되어버리고 상대방은 피로감이 누적된다.
사실 친밀한 사이라면 어느 정도의 기대와 책임이 있음을 무시할 수는 없다. 서로 원하는 바도 없고, 서로를 헤아리려는 노력도 없다면 그 관계는 남이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서 서로의 기대치를 알고 그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의견을 주고받고 조율하며 동의를 구하는 시간을 자주 가져야 한다. 자신의 기대를 일방적으로 강요하거나 반대로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소통을 통해 균형점을 찾는 것이다.
서운한 마음 놓아 보내기
서운한 마음을 말하기 전에 ‘과연 이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상황인가’, ‘내가 지금 느끼는 서운함이 내 욕심 때문은 아닐까’, ‘상대가 정녕 잘못한 일인가’ 등을 자문해 보고, 만일 상대에게 말하는 방법이 아닌 스스로 감정을 소화하는 쪽을 선택했다면 서운함을 과감히 놓아 보내야 한다.
섭섭함은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딱히 잘못이 없는, 그저 나의 기대와 현실이 일치하지 않아 비롯된 감정이다. 상대를 향한 기대가 나의 마음이듯, 그 기대를 충족하느냐는 상대의 마음이다. 내가 언제나 타인의 기대에 맞춰 말하고 행동할 수 없듯이, 타인 역시 언제나 나의 기대에 맞춰 줄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자유 의지로 행동할 권리가 있다.
나에게는 서운함이지만, 그 서운함이 상대에게는 억울함이 될 수 있다. 누군가를 서운하게 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고 그저 자신의 방식대로 행동했을 뿐인데 뜻하지 않게 뭔가 잘못한 사람이 되어버리면 당황스러울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입장이 있고, 각자 속사정이 있다. 상대방을 나만의 기준으로 판단하면 서운함은 끝이 없다.
섭섭함은 상대를 생각하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인 관점으로 바라볼 때 나타나는 반응 가운데 하나다. 관계는 상호적이므로 내가 서운한 감정을 느꼈다면 상대 역시 나로 인해 그런 감정을 경험했을 가능성이 크다. 배려는 나만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해야 한다. ‘나를 조금만 위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상대를 조금만 이해하자’로 전환할 때 섭섭함은 힘을 잃는다.
섭섭함만을 집요하게 붙잡으면 상대가 나를 기쁘고 즐겁게 해주었던 일들은 무색해지고, 그러면 삶의 자산과도 같은 좋은 기억을 잃어버리게 되어 결국 자신에게도 손해다. 서운한 마음을 사라지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동안 상대로 인해 고마웠던 기억을 떠올려보는 것이다. 고마움은 서운함의 강력한 치료제다. 서운함이 밀려오면 ‘내가 이런 기대를 했었네’ 하며 스스로 살펴보고, 상대에게 받았던 배려와 애정을 떠올리며 잘 다독여 놓아 보내자.
가깝지 않은 사이에는 기대조차 없다. 기대는 관계에 대한 애착이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고, 상대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다는 건 그 대상이 나에게 소중한 존재라는 뜻이다. 서운함의 강도는 가까운 사이일수록 크다. 그런 의미에서 서운함은 미움이 아니라 내가 여전히 상대를 믿고 좋은 관계를 이어가길 바란다는 신호일지 모른다. 혹 누군가 내게 서운한 마음을 내비친다면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서운한 감정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가까운 사이에는 때로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미처 세세히 살피지 못해 상대에게 미안한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이는 살아가면서 겪는 자연스러운 일들이다. 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않은 존재이지만,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과 너그러운 마음으로 관계를 단단히 다질 수 있다. 자신과 타인의 삶이 서운함으로 마음의 손해를 입지 않도록, 서운함을 섭섭하지 않게 흘려보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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