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소 같으면 별것 아닌 일이 유독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인데도 가시 돋친 말이 나오고, 애꿎은 사람에게 신경질을 내게 된다. 생각이 부정적으로 흘러 사실을 왜곡하며, 불안과 긴장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럴 땐 시선을 바깥이 아닌 안으로 돌려 본인의 내면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마음에 여유가 없을 때 나타나는 현상들이기 때문이다.
풀기 어려운 문제나 난감한 상황에 부닥치면 긴장되고 불안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리면 판단력이 흐려져 상황은 더욱 미궁으로 빠진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 특히 도드라지는 감정은 분노와 조급증이다. 마음속 긍정과 부정 중 부정이 발현될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그로 인해 크고 작은 실수를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고스란히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여유’의 두 가지 의미
사람은 누구든 물리적으로나 심적으로나 여유로운 삶을 꿈꾼다. 하지만 눈앞에 닥친 현실은 녹록지 않다. 세상은 날마다 새로운 것들을 쏟아내며 빠르게 변화하고, 경기는 불안정해 가정 경제도 어두운 실정이다. 사람들은 시간에 쫓기고 일에 쫓기며 숨 돌릴 틈 없이 빡빡한 일상을 살아간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돈이 조금만 더 넉넉하다면 마음의 여유가 생길 텐데’ 하고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과연 그러한 바람대로, 할 일이 없어 시간이 남아돌거나 지갑이 두둑해지면 마음의 공간도 덩달아 넓어질까. 여유의 사전적 의미는 ‘물질적·공간적·시간적으로 넉넉하여 남음이 있는 상태’, ‘느긋하고 차분하게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마음의 상태’다. 두 가지 의미처럼 외부 조건과 내적인 여유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외적인 조건이 반드시 내적 여유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시간이 많고 경제적으로 넉넉하더라도 다른 사람과의 비교, 미래에 대한 두려움, 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이 마음에 들어차면 여유가 생길 리 만무하다.
바빠서 정신이 없거나 생활이 빠듯한 와중에 여유를 가지라는 말은 일견 모순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이 주는 압박감에 떠밀려 경솔한 선택을 하고, 매번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을 탓하면 불행의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외적인 풍요를 추구하는 것을 넘어 내면의 만족과 여유를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
진정한 마음의 여유란
마음의 여유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외부의 자극에 긍정적으로 대처하는 힘’이다. 즉, 어떠한 상황에서도 마음이 동요되지 않고 자신과 타인을 안정적으로 돌볼 줄 아는 능력이다. 단순히 시간을 더 갖는 것이 아니라, 문제 안에서 좋은 점을 찾거나 힘든 상황도 이겨낼 수 있다는 긍정적인 시각이 곧 마음이 갖는 여유인 것이다.
마음의 여유는 단순히 ‘느낌’이라는 심리적 상태에 한정되지 않는다. 다수의 논문에 소개된 바에 따르면 긍정 정서 곧 마음의 여유가 실지로 주의력, 의사결정, 감정 조절 등을 담당하는 전전두엽 피질의 활성도를 높인다. 심리적 안정이 뇌의 기능적 변화를 촉진하는 것이다. 이는 스트레스 조절 능력과도 연결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의 편도체가 활성화되어 전전두엽의 기능이 저하될 수 있는데, 이때 마음의 여유는 감정을 조절하는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탓에 부정적인 사고가 힘을 얻기도 하지만, 반대로 긍정의 힘을 키우는 습관으로 마음이 넉넉해지기도 한다. 따라서 조급한 순간에도 여유를 가지고 한 걸음 물러서서 넓은 시야로 상황을 바라보며 긍정적으로 사고하면 여러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실망은 할지언정 금방 순응할 수 있고, 미래를 내다보는 시야가 생겨 당장의 일에 급급하기보다 장기적인 목표를 실현할 수 있다.
‘속도를 줄이면 사람이 보인다’는 안전 운전 문구처럼, 심리적으로도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타인이 눈에 들어온다.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귀를 열 수 있고, 인내로 기다릴 수 있으며, 이해심과 다정함으로 대할 수 있다.
마음의 공간을 넓히는 연습
마음의 여유는 삶의 모든 순간에 필요하지만 특히 그 진가를 발휘하는 때가 있다. 계획에 차질이 생기거나 갑작스러운 변수를 만났을 때,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누군가 실수했을 때, 타인이 답답하게 느껴지거나 이해하기 어려울 때 등 불쾌한 감정이 발화하려는 순간이다. 기분이 좋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동일한 태도를 가지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스스로 인지하고 조절해 나가다 보면 마음의 공간을 늘릴 수 있다.
부정적인 감정이 표출되려는 순간, 크게 호흡하며 한 박자 쉬고 대응하는 방법은 즉각적인 효과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사고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해야 한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와 같은 당위적 사고는 시야를 좁게 만들고 마음의 공간도 수축시킨다. 넓은 길을 두고 외나무다리를 아등바등 건너려는 행동과 같다. 반드시 정해진 대로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할 수 없지 뭐”, “그래도 괜찮아”라고 유연하게 말할 수 있는 태도가 마음과 삶에 공간을 만든다.
여유와 웃음은 뗄 수 없는 관계다. 마음이 여유로우면 실없는 유머에도 쉽게 웃음이 나지만 여력이 없을 땐 유머가 오히려 불편하기 때문이다. 유머는 감정적으로 느슨한 상태에서 오고 갈 수 있다. 때로는 의식적으로라도 웃으려는 노력이 여유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라는 말보다 한번 웃게 해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마음의 여유는 타인에게 곁을 내어주는 일이다. 내가 옳다는 생각, 내 의견에 따라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마음이 자기중심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면 타인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이건 왜 이렇지, 저건 왜 저렇지’ 하고 의문을 품기보다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으리라 믿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마음의 여유를 가진 사람이 베풀 수 있는 아량이다.
물리적으로 시간이 없거나 몸이 지치고 힘이 없으면 마음도 축날 수 있다. 시간에 쫓기지 않도록 미리 준비하는 습관과, 규칙적이고 건강한 생활로 신체와 정신을 안정시키는 일도 중요하다.
쫓기듯 조급하게 살아가면 자신이 얼마나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는지 잊게 된다. 눈앞의 아름다움도 보지 못한다. 삶은 영원하지 않다. 한정된 시간을 사는 동안 곁에 있는 사람과 행복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공간이 필요하다. 그 공간은 행복이 자라는 토양이다. 누군가의 소소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공감할 수 있고, 하늘 위의 구름 한 점, 길가에 피어난 풀꽃 한 송이에 눈길을 줄 수 있기에, 소중한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붙잡아 행복으로 꽃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은 눈으로 볼 수 없지만 표정과 말투에 그대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여유로운 마음은 너그러운 미소와 따뜻한 말투를 자아낸다. 상대에게 전달된 따뜻한 에너지는 온기를 품은 채 다시 돌아오고, 선순환하는 여유로움 속에서 풀리지 않은 문제는 해결된다.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관대할 수 있는 틈이 있는지 수시로 마음을 들여다볼 때, 팍팍한 삶은 살아볼 만한 무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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