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등의 원인으로 자주 소환되는 ‘성격 차이’. 성격 차이로 인한 갈등은 단순히 의견 충돌을 넘어 관계를 중단하느냐의 문제로까지 이어진다. 갈등은 주로 자신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의 성격을 과소평가하거나 비난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어느 한쪽에서 상대방의 성격을 문제 삼으면 갈등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시간이 흐르며 감정적 거리감은 더욱 멀어지고, 서로를 방어적인 태도로 대하면서 끊임없이 다툼이 일어난다.
심리학자 카를 융은 성격의 뿌리가 개인의 ‘선호도’에 있다고 분석했다. 사람은 누구나 여럿 가운데 자신이 더 편하게 느끼거나 좋아하는 쪽을 추구한다. 색깔이나 음식, 옷 입는 스타일은 물론, 생활 방식과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사람마다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 프라이드치킨을 좋아하느냐 양념치킨을 좋아하느냐와 같이, 선호에는 좋고 나쁨이 없다. 정답이나 오답도 없다.
인간관계에서 힘이 드는 이유는 타인의 성격 때문이 아니라 서로가 선호하는 바를 수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대가 선호하는 바를 수용하고 서로 다름을 이해하며 맞춰가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성격 차이는 갈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내향적인 엘사와 외향적인 안나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주인공 ‘엘사’는 내향적인 캐릭터다. 반면, 동생 ‘안나’는 외향적이다. 엘사가 여왕으로 즉위하는 날, 성문이 열리고 왕궁에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엘사는 성 안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지만, 안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어울리는 것을 즐긴다. 두 사람은 의견 차이로 대립각을 세우기에 이르고, 왕국 전체가 얼어붙는 사태가 벌어진다.
융은 성격을 크게 내향형과 외향형으로 나눴다. 내향형과 외향형은 수줍음의 정도나 얼마나 소심한가의 차이가 아니라, 크게 ‘에너지를 충전하는 방식’에 따라 구분된다. 엘사처럼 내향적인 사람은 조용한 공간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을 더 편하게 느끼고 그로 인해 에너지가 충전된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왁자지껄한 상황에 오래 있으면 피로감을 느끼고 쉽게 지치는 경향을 보인다. 안나 같이 외향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과 시간을 보내거나 활발하게 활동할 때 더욱 활기가 넘친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외롭거나 지루함을 느끼곤 한다.
내향형과 외향형을 가름하는 또 다른 특징은 ‘행동과 생각 중 어느 쪽을 먼저 하느냐’다. 외향형은 행동부터 하는 까닭에 성급한 면이 있고 실수가 잦기도 하지만, 일을 빨리 처리한다는 장점이 있다. 내향형은 생각이 먼저 정리되면 행동하는 편이기 때문에 느리게 보일 수 있으나 그만큼 실수가 적다.
내향형이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서 사람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며,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고 해서 열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또한 외향형이라고 해서 나서기를 좋아한다거나 생각을 깊게 하지 않는다는 것도 편견에 불과하다.
계획적인 헤르미온느와 즉흥적인 론
영화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에서 헤르미온느와 론은 주인공 해리와 함께 위험한 여정을 떠난다. 정해진 길도, 지도도, 도와주는 사람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 헤르미온느는 철저히 계획을 세우고 필요한 물품과 정보를 꼼꼼히 준비하는 반면, 론은 맨몸으로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대응하는 즉흥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들의 여정은 평탄치 않고, 티격태격하던 중 론은 친구들을 떠난다.
헤르미온느 같은 계획형의 사람은 실행에 앞서 다양한 정보를 탐색하고 계획하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들인다. 계획, 질서, 체계화, 통제 등을 선호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행동하기를 원한다.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어느 정도 예측하고 준비하여 환경을 능동적으로 통제함으로 긴장감과 불안을 낮추는 것이다. 계획을 벗어난 돌발 상황이나 변수는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는 까닭에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목표 달성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
론처럼 즉흥적인 사람은 틀에 얽매이기보다는 자유분방한 것을 좋아하고, 상황을 통제하지 않으며 주어진 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한다. 큰 계획 안에서 상황을 지켜보며 자연스레 흐름에 맞추다 보니 구체적인 계획이 없을 뿐, 마냥 대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계획형의 사고가 한 방향을 가리킨다면, 즉흥형은 사방으로 열려있다. 처음에 목적을 잡았더라도 중간에 관심을 끄는 무언가 나타나면 호기심에 이끌려 계획을 쉽게 변경하기도 한다. 변수가 일어나도 개의치 않는 등 낙천적인 사람이 많다.
이상적인 홈즈와 현실적인 왓슨
소설 《셜록 홈즈》의 탐정 홈즈와 그의 동료 왓슨 박사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정보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이상적인 홈즈는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정보에 의미를 둔다. 사실 너머에 숨은 연관성이나 패턴을 찾아내고, 촉과 육감에 의지해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발견해 내려고 한다. 반면 현실적인 왓슨은 사건 현장을 꼼꼼히 살피고 관찰해 구체적인 정보를 수집한다. 경험, 과정, 숫자, 단어의 뜻 등 실질적인 정보를 통해 상황을 인식하고 분석하여 그것을 토대로 결론을 낸다.
이상적인 사람과 현실적인 사람은 대화하는 스타일에서도 구분된다. 이상적인 사람은 명확한 단어나 세부적인 사항보다 의미와 큰 맥락을 중시한다. 은유나 비유로 말하기를 즐겨하고, 풍부한 상상력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데 능하다. 현실적인 사람은 ‘지금’과 ‘여기’에 집중해 실용적인 이야기를 하기 원하며, 정확한 수치나 데이터를 들어 구체적으로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는 것을 선호한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의사소통에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현실적인 사람은 이상적인 사람의 말이 다소 황당하고 의미 없게 느껴질 수 있고, 이상적인 사람은 현실적인 사람의 말이 지나치게 일상적이고 밋밋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이 대상을 섬세히 관찰하게 하고, 엉뚱한 생각이 창의력으로 이어져 세상을 바꾸는 원천이 된다.
사고형인 아이언맨과 감정형인 캡틴 아메리카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슈퍼히어로들의 활동을 규제하는 협정에 대해,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는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아이언맨은 규칙과 책임의 필요성에 동의하며 찬성하고, 캡틴 아메리카는 주체적인 활동과 자유를 위해 반대한다. 결국 슈퍼히어로 팀은 분열되는 사태에 이른다.
아이언맨은 사고형의 성향을, 캡틴 아메리카는 감정형의 성향을 지닌 캐릭터다. 사고와 감정을 나누는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기느냐’다. 사고형인 사람은 좋고 싫음보다 옳고 그름을 기준으로 의사를 결정한다. 그런 까닭에 객관적인 사실과 논리, 원칙에 따라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은 상황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과정이 먼저 이뤄질 때 공감할 수 있다. 누군가 힘들어하면 마음을 위로하기보다는 실질적인 개선책을 제시하는 방법으로 도우려고 한다.
반면 감정형의 의사결정 기준은 주관적인 가치 즉, 마음이 가는 쪽이다. 옳고 그름보다는 좋고 싫음에 초점을 둔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감정적인 측면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인간미가 넘친다. 다른 사람의 기분에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누군가 어려운 일을 겪으면 조언보다 공감을 표현해 위로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감정 교류가 우선 이루어지고 난 뒤에 논리적으로 사고한다.
사고형은 감정의 결핍, 감정형은 논리적 사고의 부족을 뜻하는 게 아니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성향을 지녔다고 해서 차가운 사람은 아니며, 감정이 풍부하다고 해서 비이성적인 사람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엘사와 안나는 서로를 향한 믿음으로 오해를 풀고 왕국을 평화롭게 다스린다. 헤르미온느와 론은 진심으로 화해하여 여정을 완수하고 악당을 물리친다. 홈즈와 왓슨은 서로 다른 관점을 보완하여 미궁에 빠져 있던 사건을 해결하며,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는 서로를 인정하고 힘을 합쳐 세상을 구한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할 때 각자의 강점은 최대한 발휘되고 차이는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한다. 서로에게 누구보다 든든한 존재가 된다. 가족이나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의 성향을 이해하고 그에 맞게 대하는 법을 터득해 나가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타인의 성향을 이해하면서 그에게 자신의 행동이 어떻게 느껴지는지도 객관적으로 알 수 있고, 이러한 자기 성찰은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
나의 타고난 성향과 거리가 멀더라도, 살아가면서 순간순간 마주하는 상황에 도움이 되는 부분들을 연마하는 연습을 하면 좀 더 행복하고 건강한 삶이 된다. 심리학 이론에서는 편의상 주요 성향을 이분법으로 나누곤 하지만 실제 인간은 다양한 특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서로 달라서 좋고, 다르면서 같은 우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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