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요 속의 빈곤.’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20세기 초, 부유한 사회가 소비보다 저축을 더 하려는 경향 때문에 오히려 빈곤해진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근래에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사회적 결핍을 느끼는 현대인의 모순을 지적하는 표현으로 두루 사용된다. 유사 이래 그 어느 때보다 먹을 것, 입을 것, 누릴 것들이 넘쳐나는 풍요의 시대에 빈곤을 겪는 이들이 많다니, 가난과 결핍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현상이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지라 아무리 좋은 조건과 환경이라도 익숙해지면 더 이상 만족감을 느끼기 어렵다. 우리의 오감은 반복되는 자극을 더 이상 새롭게 느끼지 않는 까닭에, 뭔가를 얻으면 다른 뭔가를 더 얻으려고 본능적으로 갈구하게 된다. 그러나 한 걸음 다가가면 한 걸음 멀어지는 신기루처럼, 가지면 가질수록 행복해질 거라는 기대는 어긋나기 마련이다. 늘 만족감을 느끼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이지만, 많이 가지는 방식으로는 결코 욕구를 해소할 수 없다.
불행한 사람은 부족한 면만 바라본다
스펙이 부족하다, 용모가 부족하다, 입을 옷이 부족하다, 노후 자금이 부족하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서는 당연시하고, 부족한 면만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물질적인 면, 신체적인 면, 지적인 면, 처한 상황과 환경 등 여러 면에서 좋은 점보다는 싫은 점을, 잘되는 일보다 안되는 일을, 편안한 점보다 거슬리는 점을 더 잘 찾아내어 아쉬움을 토로한다.
현대 사회가 사람들로 하여금 현재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도록 부채질하는 건 사실이다. 과도한 미디어와 광고가 ‘이것이 필요하다’며 끊임없이 소비를 부추기고, 사회적 기준에 따라 개개인의 가치와 행복이 측정되는 가운데 타인과의 비교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부족함을 느끼고 보완하려는 태도는 진취적인 삶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부족한 부분만 부각하며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불안과 불만이 떠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상황에 놓여도 “~하면 더 좋을 텐데” 하고 부족함을 발견하는 게 습관이 된다. 결핍이 해소되어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 부족한 부분이 채워지지 않으면 만족할 수 없다는 생각이 스트레스와 열등의식을 초래한다.
만족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
‘부족’의 반대말이 사전적으로는 ‘충분’이나, 행복하게 사는 법을 터득한 사람이라면 ‘만족’이라고 답할 것이다. 만족은 ‘주어진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결핍을 지양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고 조금의 불편도 용납하지 않으려고 하거나 해결하는 데에만 급급하면 오히려 부족한 부분에 더욱 민감해진다. 그러나 자신과 타인을, 현재 처한 생활과 여건을 겸허히 받아들이면 만족은 그리 어렵지 않게 된다.
어떤 이들은 만족하는 삶을 현실에 안주하는 태도로 오인하곤 한다. 현실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은 결코 체념이나 정체를 뜻하지 않는다.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도 아니다. 부족함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인정할 때, 성장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고 삶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 대인관계에서도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만족하면 지나친 요구를 하지 않게 되고, 그러한 이해와 인정이 발전의 발판으로 작용한다.
사람의 욕구는 끝이 없고, 부족함을 외부로부터 다 채울 수도 없다. 세상 모든 일이 자신의 바람대로 완벽하게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대신 흘러가는 대로 받아들이면 부족함에 위축되거나 불편할 필요가 없어진다.
행복은 만족에 있다
부족해도 만족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충분히 가져도 더 갖길 원하는 사람이 있다. 부족해서라기보다는 만족하지 못해서 불행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만족할 줄 모르면 언제나 불행할 수밖에 없지만 충분하지 않아도 만족하면 날마다 행복할 수 있다. 행복은 부족을 채우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만족하는 데 있다.
스스로 만족하면 주변 사람이나 세상을 향해 불만을 제기할 일이 많지 않다. 내면의 풍요로운 마음이 바깥으로 번져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긍정적인 기운을 준다. 그러나 만족하지 못하면 매사에 불평을 토로할 일이 많아 주변 사람들마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한다. 가령 식당에서 음식이 짜다, 싱겁다, 위생 상태가 불결하다 등등 불만을 드러내면 자신도 즐겁지 않고 주변 사람들까지 불편해질 수 있다. 상황을 당장 바꿀 수 없는 처지에서 부족한 점,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을 토로한다면 그로 인해 얻는 유익이 있을까.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불평보다 만족을 택하는 쪽이 자신과 주위 사람의 행복을 위한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만족은 단순히 감정적 해소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삶의 질과 성장을 결정짓는다. 주어진 것, 처한 상황에서 만족을 느끼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많은 유익을 얻는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기
사람들은 자신에게 없는 것은 쉽게 발견하지만, 이미 가진 것은 잘 보지 못한다. 당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소해서 별거 아니라고 여기는 것이라도 알고 보면 가치 있고 소중하며,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중요한 자산일 수 있다. 그러니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의 가치를 인지할 줄 알아야 한다.
부족한 것에 집중하면 이미 가진 것마저 잃을 수 있다. 갖지 못한 것, 당장 가질 수 없는 것에 미련을 내려놓고 지금 있는 것에 만족하며 그것을 좋아하면 행복하다. 좋아하는 것, 원하는 것을 이미 갖고 있으니 불행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 가진 것을 좋아할지, 가지지 않은 것을 좋아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단순한 문제가 행복과 불행을 가름하는 셈이다.
이미 있는 것에 주목하면 삶이 달라진다. 한 끼 식사, 튼튼한 두 다리, 돈을 벌 수 있는 일터, 비를 막아주는 지붕…. 현재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감사의 이유가 된다. 얼마나 많은 양을 소유했느냐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행복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소유만 아니라 건강, 지식, 재능 등에 있어서도 내게 어떤 자원이 있고, 어떤 점이 유리한지 살펴서 이미 가진 것에 긍정하고 감사할 때 그것들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고, 새로운 기회가 오면 붙잡을 수 있다. 어려움이 닥쳐와도 자신에게 허락된 것들을 활용해 거뜬히 이겨낼 수 있다.
살다 보면 욕망에 사로잡힐 때도 있고, 부족하고 아쉬운 점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다. 불편한 상황이 불쑥불쑥 발생하기도 한다. 만족이라는 능동적인 감정이 더없이 소중하고 인생에 의미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 부족함이 없다면 만족이 주는 행복을 느낄 기회조차 없을 테니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 이미 행복의 재료들을 충분히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풍요 속에서 부족한 것을 찾아 집착하지 말고, 이미 누리는 축복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그것들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빈틈이 있기에 세찬 바람이 불어도 넘어지지 않는 돌담처럼, 삶의 빈틈이 있기에 그 사이로 바람이 통하고 햇살이 머문다. 가질수록 더 가지기를 바라는 본능에 휩쓸리지 않고 만족하는 습관을 지니면 소박한 행복을 자주 누릴 수 있다. 모든 게 완벽하지는 않아도 만족을 선택하면 부족은 채워진다. 넉넉한 행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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