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든든한 조력자, ‘비언어’

언어는 의사소통의 핵심 수단이지만, 마음을 나누는 대화는 비언어로 완성된다.
의사소통에는 표정을 비롯해 시선, 몸짓, 자세, 신체 접촉, 음성과 억양, 침묵 등 비언어가 사용된다.

소중한 사람에게 애정 어린 눈빛과 온화한 미소를 보내고, 손을 잡아주기도 하며, 어깨를 쓰다듬거나 두 팔 벌려 포옹하며 온기를 나눌 수 있기에 삶은 풍요롭다.

가족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싶거나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전달하고 싶다면, 가족에게 ‘들려주는 말’도 중요하지만 ‘보여주는 모습’까지 그에 걸맞아야 한다.

긍정적인 신호를 아낌없이 주고받을 때 가족은 서로를 향한 믿음이 커지고 사랑이 샘솟는다.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가장 큰 차이는 언어로 소통한다는 점이다. 언어가 강력한 의사소통 수단이라는 점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대화는 언어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말을 주고받으며 소통한다고 생각하지만, 대화는 언어와 함께 여러 가지 요소들을 동반하는 행위다. 의사소통에 사용되는 언어 이외의 수단이 바로 ‘비언어’이다. 표정을 비롯해 시선, 몸짓, 자세, 신체 접촉, 음성과 억양, 침묵까지 비언어에 속한다.

비언어와 관련해 널리 알려진 이론으로 미국의 심리학자 앨버트 머레이비언(Albert Mehrabian)이 주창한 ‘머레이비언의 법칙’이 있다. 감정과 태도를 전달할 때 언어가 미치는 영향이 7퍼센트, 목소리 톤이 38퍼센트, 표정이나 몸짓 등 시각적인 요소가 55퍼센트라는 뜻이다. 말하자면, 시각 정보와 청각 정보를 포함한 비언어적 요소가 미치는 영향은 93퍼센트를 차지한다. 이는 비언어적 요인에 따라 언어의 의미가 다르게 전달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동일한 언어라도 말하는 사람이 어떤 비언어적 요소를 동반하느냐에 따라 듣는 사람에게 완전히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보고 듣는 것 모두가 소통


사람의 감각기관 중 외부로부터 가장 많은 정보를 수집하는 경로는 시각이다. 눈에 보이는 것을 신뢰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대화할 때도 오로지 상대방의 말소리만 듣지 않는다. 상대의 눈빛과 입꼬리 그리고 얼굴 전체에 드러나는 표정을 살피고, 손짓과 자세도 본다. 시각적인 요소는 말보다 먼저 상대에게 전달되어 대화의 방향을 좌우지하기도 한다. 언어 없이 그 자체로 메시지를 전할 수도 있다. 눈을 흘겨보거나 입을 내미는 식으로 안 좋은 감정을 표현할 수 있고, 말없이 손을 잡는다거나 포옹하는 행위로 긍정의 메시지를 전할 수도 있다. 이러한 비언어적 표현은 때로 말보다 강력하다.

비언어의 청각적 요소를 ‘준언어’라고 한다. 우리는 상대의 말을 들으면서 말의 내용만 아니라 목소리의 높낮이와 강약, 음색, 어조, 빠르기 등을 감지한다. 같은 말이라도 청각적인 요소가 어떠한지에 따라 공격적으로 전달되기도 하고, 부드럽게 전달되기도 한다. 목소리에는 말하는 사람의 감정 정보가 실리기 때문에 우리는 목소리로 상대의 기분을 파악하고 그에 반응한다. 전화 통화와 같이 상대를 직접 볼 수 없는 상황에서는 청각적 요소에 더욱 주의를 기울인다.


언어에 힘을 싣는 비언어


때때로 언어만으로 그 역할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비언어를 적절히 사용하여 언어의 내용과 의미를 강조하고, 하고자 하는 말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비언어가 언어의 한계를 보완하는 것이다. 화려한 언변보다는 대화의 분위기를 쥐고 있는 비언어적인 요소들이야말로 말에 힘을 실어준다.

가령 한 사람은 말로만 배고프다 하고, 다른 사람은 얼굴을 찡그린 채 배를 부여잡으며 배고프다고 말하면 우리는 으레 후자가 더 배가 고프다고 짐작한다. 상대가 말로만 “잘했어” 하기보다는 웃는 얼굴로 엄지를 치켜들면서 말하면 같은 말이라도 더 진정성 있게 받아들인다. 물건을 판매하는 사람이 반짝이는 눈빛과 분명한 어조로 말하면 물건에 더욱 신뢰가 간다.

특히 감정과 태도는 말보다 표정, 몸짓, 시선 등으로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 디지털 기기를 이용한 소통에서도 감정을 표현할 때 표정 이모티콘을 사용하지 않는가. 언어만으로는 내면의 풍부한 감정을 다 표현하기 어렵다. 시각 정보가 담긴 비언어가 더해져 복잡하고 미묘한 고차원의 소통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들리는 것보다 보이는 것을 믿는다


“나 진짜 화 안 났거든” 하며 문을 쾅 닫고 나가버리는 사람을 보며 진짜 화나지 않았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말 미안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하며 실실 웃거나 딴청을 피운다면 과연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믿을까? 혹은 “난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마” 하며 눈을 찌푸리면서 손으로 이마를 짚는다거나, “나 화 났다” 하며 장난기 어린 말투로 얼굴에 미소를 짓는다면 어떨까. 이처럼 하는 말과 보여주는 모습이 일치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어느 쪽이 진실이라고 판단할까.

청자는 화자가 표현하는 언어와 비언어를 종합하여 해석하고 판단한다. 중요한 사실은, 말의 내용보다는 화자가 보여주는 모습에서 더 많은 의미를 유추해 낸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언어와 비언어가 일치하지 않고 모순되면 정작 소통의 핵심인 언어를 신뢰하지 않게 된다. 입으로 아무리 긍정을 말해도 표정이나 행동이 그렇지 않으면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부정적인 감정을 토로하면서도 얼굴에 미소를 짓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고 여긴다. 말보다 본 것을 믿는다.


사람은 감정적인 존재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기분이 정말 나빴어.’ 이렇게 생각한 적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상대가 무슨 말을 했는지보다 어떻게 말했는지가 마음에 오래 남을 때가 있다. 그 ‘어떻게’에 해당하는 것이 비언어다. 말하는 방식이 배려 깊으면 말하려는 내용이 설득력 있게 전해져 행동으로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내용 자체는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더라도 상대가 기분 나쁘게 느끼면 소용이 없다.

사람은 이성적인 존재이지만 감정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기계나 로봇처럼 언어를 문자로만 분석하지 않고 마음으로 이해하고 감정적으로 받아들인다. 특히 대화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서로의 감정을 교환하는 과정이다. 공감을 바탕으로 해야 원활한 대화가 이루어지는데, 긍정적인 비언어로 따뜻함과 호감을 표현함으로써 공감의 깊이가 더해진다. 거칠고 투박한 말투, 감정을 상하게 하는 비언어로는 성공적인 소통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므로 ‘무엇을 말할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말할지’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말주변이 부족하더라도 비언어의 힘을 빌리면 진심이 전달되고, 그 진정성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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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으로 나가는 말에 마음속 간절함과 애틋함을 다 담아내려면 말을 얼마나 잘해야 할까. 자음과 모음의 조합으로 내는 소리만으로는 마음에 있는 바를 다 보여줄 수 없다. 그런 언어는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언어의 조력자 역할을 하는 비언어가 있다. 소중한 사람에게 애정 어린 눈빛과 온화한 미소를 보내고, 손을 잡아주기도 하며, 어깨를 쓰다듬거나 두 팔 벌려 포옹하며 온기를 나눌 수 있기에 삶은 풍요롭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기가 돈다.

긍정적인 신호를 아낌없이 주고받을 때 가족은 서로를 향한 믿음이 커지고 사랑이 샘솟는다. 가족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싶거나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전달하고 싶다면, 가족에게 ‘들려주는 말’도 중요하지만 ‘보여주는 모습’까지 그에 걸맞아야 한다. 나의 언어만 아니라 비언어가 가족에게 어떻게 전해질지 세심히 살펴야 한다. 내게서 풍기는 모든 것이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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