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알지 못했죠 / 우리가 무얼 누리는지 / 거릴 걷고 친굴 만나고 / 손을 잡고 껴안아 주던 것 / 우리에게 너무 당연한 것들 … 우리가 살아왔던 평범한 나날들이 다 /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버렸죠 / 당연히 끌어안고 당연히 사랑하던 날 …’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잃어버린 일상의 소중함을 노래하는 가사다. 노랫말처럼 팬데믹 이전에는 서로의 손을 잡고, 만나서 함께 식사하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는 일이 당연했다. 그러나 그런 평범한 일상이 어느 순간 중단되면서 당연하지 않게 되었다. 불현듯 찾아온 범유행 전염병은 많은 것을 앗아가기도 했지만 우리가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일들이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교훈을 남겼다.
‘당연’이라는 개념은 과학적 법칙에서부터 사회적 통념, 개인의 주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범주에서 사용된다. 지구에는 당연히 생명체가 있다, 모든 생명체는 당연히 죽는다, 부모는 당연히 희생해야 한다, 음식을 먹기 전에는 당연히 손을 씻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이 진정 당연하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현재 당연한 일이 미래에는 불가능할 수 있고, 지구에서 당연한 환경이 다른 행성에서는 기적일 수 있다. 나에게 당연한 일이 타인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오랜 세월 반복되어 왔거나 보편적이라는 이유로, 또는 개인의 경험으로 얻은 신념이 확고하다는 이유로 그것을 당연시하고 절대시하면 사고의 오류에 빠지게 된다.
불행의 시작점, "당위적 사고"
당위적 조건이 없음에도 그것을 기대하는 일방적인 신념 또는 요구를 ‘당위적 사고(should thinking)’라 한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불완전하고 완벽하지 못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타인, 인생과 세상에 대해 ‘마땅히 그러해야만 한다’는 비합리적이고 왜곡된 생각을 고집하곤 한다. 뚜렷한 근거 없이 그저 고정관념이나 익숙한 쪽을 따르면서 심리적 안정을 위해 그것이 옳다고 여기는 것이다.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법과 규칙은 지켜야 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바람이나 희망까지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일종의 규칙으로 삼으면 불행이 시작된다. 그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고 타인과의 관계에 문제가 발생하며 결국 삶의 만족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 ‘절대 실수하면 안 된다’와 같이 자신에게 부여하는 당위는 불안과 우울을 조성하고 자아존중감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업무 성과를 달성하거나 성적이 좋게 나와도 마땅한 결과로 치부하기 때문에 기쁨과 행복을 만끽하지 못한다. 타인을 향한 당위적 사고는 ‘저 사람은 나에게 잘 대해주어야 한다’, ‘부모라면, 자녀라면, 배우자라면 당연히 이러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희생과 헌신을 당연시하며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식이다. 상대방이 그에 부응하더라도 당연히 할 일을 했다고 여기기 때문에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게 된다. 그러한 태도가 계속되면 갈등은 불가피해진다.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야 한다’와 같은, 세상에 대한 당위는 불평과 불만을 유발하기 쉽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불의의 사고나 질병이라도 그것이 자신에게 찾아오면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며 원망하는 까닭도 마음 깊은 곳에 ‘나에게는 나쁜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의식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당위적 사고는 좋은 일에는 무감각하고, 그것이 어긋날 때 분노와 원망을 낳을 뿐이다.
각자의 당연함은 다르다
부부가 집안일을 분담하기로 하고 아내는 청소를, 남편은 설거지를 했다. 아내가 청소를 끝낸 뒤 주방에 가 보니 싱크대 여기저기에 물이 묻어 있고, 설거지한 식기들은 건조대의 마른 그릇 위에 포개져 있었다. 가스레인지 주변은 기름 튄 자국이 그대로 있었다. 아내는 설거지한 거 맞느냐며 남편을 타박했고, 남편은 억울해했다. 남편에게 설거지란 단순히 싱크대에 있는 그릇을 씻는 것이었고, 아내에겐 그릇을 씻는 것은 물론 건조대의 마른 그릇을 다른 곳에 정리하고 싱크대와 가스레인지 주변을 깨끗이 닦는 것까지 포함이었다.
남편과 아내가 생각하는 설거지의 기준이 다르듯 각자 당연하게 여기는 부분들이 있다. 상대에 따라 그 당연함은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자기 중심성’이 있어서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을 상대방도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 종종 착각하곤 한다. 자기의 생각이나 판단이 보편적이고 상식적으로 옳다고 여겨 자신의 기준을 타인에게 적용하는 것이다. 많은 갈등은 한쪽이 당연히 여기는 바를 다른 쪽이 부정하거나 한쪽이 당연하지 않다고 여기는데 다른 쪽이 당연시할 때 발생한다.
당연하다고 규정하는 바가 많을수록 화가 날 일도 많아진다. 상대방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안 하거나, 당연한 질문을 하거나, 당연한 부탁을 안 들어주는 등 내가 생각하는 ‘당연함’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쾌감이 유발되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사람들은 ‘당연함’이라는 자신만의 근거를 이유로 화내는 행위도 정당화한다.
관건은, 나만의 당연함으로 타인을 판단하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일이다. 화가 나는 이유가 타인의 잘못보다는 자신이 규정한 ‘당연함’이라는 프레임 때문인 경우가 많다. 상호 간에 당연함이 성립되려면 합의 과정이 필요하다. ‘당연히’, ‘적어도’, ‘상식적으로’라는 말로 자기주장만 하면 타협의 여지는 없어진다. 열린 시각과 유연한 사고로, 언제 어디서든 나와 다른 생각과 마주할 수 있음을 유념하자. 타인을 나의 프레임에 억지로 맞추려 하지 말고, 상대방이 당연하게 여기거나 그렇지 않게 여기는 점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동반되어야 한다.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면 행복하다
미국의 사상가 윌리엄 제임스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중에는 어떤 것도 보편적으로, 절대적으로, 불변하게 옳거나 틀린 것은 없다”고 했다. 마음에 스스로 정한 규칙은 안정감을 줄 수 있지만 그 규칙은 환경, 상황, 기분 등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그처럼 불완전한 나의 당연함에 타인이 동의할 의무는 없다.
원하는 바,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당위성을 부여하는 말보다는 희망 조의 말이 좋다. ‘설거지는 이렇게 해야 해’가 아닌 ‘설거지할 때 이렇게 하길 바라’, ‘내가 이만큼 수고했으니 당연히 결과가 좋아야지’가 아닌 ‘수고한 만큼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면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의 기쁨도 더 크다. ‘당연히 이래야지’가 아닌 ‘그럴 수도 있지’라는 태도는 자기 확신의 욕망과 실망, 분노를 잠재우는 데 도움이 된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므로 어떤 일이 반복되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무뎌지고, 무뎌지면 당연해진다. 요샛말로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실상은 익숙하기 때문이다. 익숙함에 젖어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오류를 방지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감사’다. 감사는 어떤 이익을 얻을 때나 좋은 일이 생겼을 때만 아니라, 매 순간 느끼고 자각하기에 달렸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라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면 감사할 거리는 넘쳐난다. ‘감사할 게 있어야 감사하지’라고 생각한다면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음을 자각해야 하지 않을까.
불행한 가정의 공통점은 가족의 수고와 노력을 당연시한다는 점이다. 반면, 행복한 가정의 공통점은 익숙하고 당연하게 여겨지는 일 속에서 감사를 발견해 내고 가족에게 감사의 말을 아끼지 않는다는 점이다.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면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고 마음에는 행복이 깃든다. 그런 가정은 가족과 함께하는 한 끼 식사에도 감사와 행복이 가득하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모든 안녕에는 대가가 있고, 나의 평안 뒤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있게 마련이다. 거할 집이 있다는 건 누군가 그 집을 짓고 나에게 제공해 준 덕분이다. 먹을 양식이 있다는 건 누군가 그것을 재배하고 유통하고 요리해 준 덕분이다. 가족, 친구, 동료 등으로부터 받는 지지와 사랑 역시 가까운 사이라서 당연한 게 아니라 감사한 일이다.
우리는 늘 그래왔던 일, 익숙한 부분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지 않는다. 그러나 ‘이게 정말 당연한 일인가?’라는 질문으로 보편화된 관점을 깨뜨리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 뉴턴은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사과가 아래로 떨어지는 건 당연하지’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당연함을 부인하거나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여지를 열어두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과 천지 차이의 결과를 낳는다. 세상 그 무엇도 당연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 우리의 삶과 주변 사람들은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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