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늘 누군가를 설득해야 한다. 원하는 것이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혹은 상대방의 유익을 위해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켜야 하는 경우가 끊임없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가정만 보아도 그렇다. 편식하는 아이를 골고루 먹게 하는 일, 부모님의 걱정과 염려를 내려놓게 하는 일, 배우자와 엇갈리는 의견을 조정하는 일 등 가족의 일상은 서로를 설득하고 설득당하는 일의 반복이다.
설득은 상대방의 기분을 언짢게 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에게 나의 의도를 긍정하고 수용하게 만드는 소통법이다. 갈등 없이 다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기에, 우리는 때로 가족을 ‘설득’해야 하는 경우임에도 설득이 아닌 명령이나 억압과 같은 쉬운 방법을 택하곤 한다. 가족의 불만이 쌓이고 갈등을 유발하는 이유가 이 때문인 경우가 많다.
내가 상대에게 요구하는 바가 있는 만큼 상대방도 나에게 원하는 바가 있게 마련이다. 내가 원하는 바를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도, 그렇다고 모든 일을 상대가 원하는 대로 맞춰줄 수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설득하는 방법을 익히고 연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설득의 중요성을 일찍이 깨달은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의 3요소로 로고스(Logos), 파토스(Pathos), 에토스(Ethos)를 꼽았다. 이는 논리, 감정, 신뢰를 뜻한다. 이 세 가지는 오늘날에도 설득을 위한 필수 원칙으로 통용되고 있다.
로고스(Logos) 즉 논리란, 자기의 생각을 이치에 맞도록 이끌어 가는 과정이나 원리를 뜻한다. 누군가를 설득하려면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논리적인 근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설득력이 떨어지고 억지 주장이 되고 만다. “왜?”라는 상대방의 물음에 “내 말이 무조건 맞아”, “그냥 하라는 대로 해”라고 하면 반발심만 살 뿐, 주장에 대한 이유가 합리적이거나 정당하지 않으면 수용될 가능성은 떨어진다.
누군가를 설득할 때는 상대방의 관점에서 타당한지 바라보는 역지사지의 태도가 필요하다. 수학이나 과학과 달리 사람의 생각과 주장에는 절대적인 정답이 없다. 나에게는 상식적인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면 말할 때 일방적인 논리 대신 상대방의 관점에서 이해하기 쉬운 논리를 풀어낼 수 있다. 논리는 상대방을 납득시키기 위한 것이므로, 상대방이 납득하지 못하는 논리는 나의 관점에선 완벽해 보여도 결국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자기의 생각은 논리적으로 말하되, 다른 사람의 의견에 대한 반박은 자제해야 한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논쟁하거나 반박하면 상대를 이길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헛된 승리다”라고 말했다. 냉철한 논리를 내세워 오류를 지적하고 상대방을 굴복시키면 이겼다는 자부심이 들지 몰라도, 상대방의 마음이 떠나버리면 결코 이긴 게 아니다. 논쟁에서 이겨도 상대방의 마음을 잃으면 결국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생각은 틀렸다는 전제로 반박에 몰두하면 논쟁에 빠지기 쉬우므로,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려는 자세도 필요하다. 논리적으로 말하는 데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자칫 말투가 차갑고 딱딱해질 수 있다는 점도 유념하여 부드러운 말투를 사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므로 상대방을 설득할 때는 논리와 함께 감정적인 교류 즉, 파토스(Pathos)가 더해져야 한다. 주장이 한 치 오류 없이 논리적인 것과 그 주장을 듣는 사람 마음이 바뀌는 것은 별개다. 사람은 타인의 논리적인 주장으로 인해 자신의 사고나 신념이 틀렸다고 밝혀지면 저항하려는 심리가 발동하기 마련이고, 자신의 주장이 사리에 맞지 않더라도 그것을 더욱 굳게 하려고 반론을 지어내기도 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인간의 행동은 이성과 감성이란 두 마리 말에 이끌리는 쌍두마차다. 하지만 이성은 작은 조랑말일 뿐이고 감성은 커다란 코끼리와 같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감성 및 감정은 이성보다 영향력이 더 커서 때로는 합리적인 선택이 감정에 밀려나곤 한다. 감정이 상하게 되면 상대방의 말을 이성적으로는 납득할지 몰라도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청자의 감정이 움직여야 논리적인 설명도 받아들여진다.
타인의 감정에 다가가는 일은 ‘공감’을 통해 이루어진다. 공감은 타인의 감정과 생각, 상황을 식별하고 이해하는 능력이다. 공감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어야 한다. 들을 때는 상대방이 어떤 주장을 하건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에 앞서 우선은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상대방의 말에 반드시 동의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상대방 주장의 오류를 찾기보다는 그렇게 생각하고 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라 믿고 최대한 긍정적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귀 기울여 잘 들어주다 보면 상대방 스스로 자기의 말이 이치에 맞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도 한다.
사람은 ‘이 사람이 나를 아끼는구나. 나를 생각해 주는구나’라고 생각할 때 비로소 마음을 연다. 상대가 비난하는 태도를 보이면 자기의 뜻을 고수하며 억지를 부릴 수 있지만, 이해받고 수용된다는 느낌이 들면 상대방의 말을 받아들일 여유가 생기고 동의할 여지도 커진다.
에토스(Ethos)는 말하는 사람의 성품을 뜻한다. 아무리 정연한 논리를 내세우더라도 청자가 화자를 신뢰할 수 없다면 설득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청자가 전적으로 화자를 신뢰하고 호감을 가질 때 설득은 보다 용이해진다. 같은 말이라도 좋아하는 사람이 말하면 더 믿음이 가고 공감하게 되는 이유가 이런 이치 때문이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신뢰하면 그 사람의 논리가 다소 빈약하더라도, 나의 감정과 조금은 괴리가 있더라도 그 말에 기꺼이 따를 수 있다. 따라서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신뢰를 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타인의 신뢰를 얻으려면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면 안 된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은 아무렇지 않게 무단투기를 한다면 누구도 그의 말을 듣지 않을 터, 자신이 한 말이나 약속은 반드시 지키도록 노력하는 모습을 보일 때 진실성과 진정성을 보여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거짓말이나 부정적인 말을 자주 하거나 쉽게 분노하는 모습도 ‘못 믿을 사람’이라는 인상을 준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말로 희망을 주고 좋은 에너지를 전할 때 주변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신뢰감을 얻을 수 있다.
신뢰가 유지되는 관계에서는 어쩌다 실언하더라도 가벼운 말실수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고, 반대되는 의견을 말하더라도 호감이 거부감을 낮춰 귀담아듣게 된다.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면 자신이 어떤 식으로 말하는지, 공감 능력이 어떤지 진단해 보는 것도 좋지만, 평소 신뢰를 얻을 만한 모습을 보였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신뢰 관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 공들여야 하고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한 차례 설득을 위해 평소와 다른 모습을 꾸며내거나 단시간에 자기 의견을 따르게 하려 권위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관계는 망가지기 쉽다. 더디더라도 꾸준히 믿을 만한 행동을 보여주며 호감을 쌓아야 한다. 공들여 쌓은 신뢰는 원활한 소통을 이루는 연결고리가 되고, 애써 설득하지 않고도 설득을 가능하게 만든다.
좋은 설득은 상대방에게 ‘스스로 올바른 선택을 했다’라는 만족감을 준다. 서로가 만족스러운 결과에 이르려면 타인의 권리와 존엄성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로고스·파토스·에토스를 동원하여 상대방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도와야 한다. 설득은 승패가 달린 싸움이 아니라 서로 공존하는 수단이다. 단순히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려는 기회로 삼기보다는 신뢰를 기반으로 지속적인 유대를 이어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애를 쓴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법은 없다. 상대방 역시 자아를 지닌 존재이며, 자유의사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상대방이 당장 마음을 바꾸지 않더라도 체념하거나 노여워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의 설득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고 사안에 따라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음을 기억하자. 설득은 상대방의 마음 문을 억지로 열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설득은 상대방의 기분을 언짢게 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에게 나의 의도를 긍정하고 수용하게 만드는 소통법이다. 갈등 없이 다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기에, 우리는 때로 가족을 ‘설득’해야 하는 경우임에도 설득이 아닌 명령이나 억압과 같은 쉬운 방법을 택하곤 한다. 가족의 불만이 쌓이고 갈등을 유발하는 이유가 이 때문인 경우가 많다.
내가 상대에게 요구하는 바가 있는 만큼 상대방도 나에게 원하는 바가 있게 마련이다. 내가 원하는 바를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도, 그렇다고 모든 일을 상대가 원하는 대로 맞춰줄 수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설득하는 방법을 익히고 연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설득의 중요성을 일찍이 깨달은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의 3요소로 로고스(Logos), 파토스(Pathos), 에토스(Ethos)를 꼽았다. 이는 논리, 감정, 신뢰를 뜻한다. 이 세 가지는 오늘날에도 설득을 위한 필수 원칙으로 통용되고 있다.
로고스: 논리적으로 말하기
로고스(Logos) 즉 논리란, 자기의 생각을 이치에 맞도록 이끌어 가는 과정이나 원리를 뜻한다. 누군가를 설득하려면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논리적인 근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설득력이 떨어지고 억지 주장이 되고 만다. “왜?”라는 상대방의 물음에 “내 말이 무조건 맞아”, “그냥 하라는 대로 해”라고 하면 반발심만 살 뿐, 주장에 대한 이유가 합리적이거나 정당하지 않으면 수용될 가능성은 떨어진다.
누군가를 설득할 때는 상대방의 관점에서 타당한지 바라보는 역지사지의 태도가 필요하다. 수학이나 과학과 달리 사람의 생각과 주장에는 절대적인 정답이 없다. 나에게는 상식적인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면 말할 때 일방적인 논리 대신 상대방의 관점에서 이해하기 쉬운 논리를 풀어낼 수 있다. 논리는 상대방을 납득시키기 위한 것이므로, 상대방이 납득하지 못하는 논리는 나의 관점에선 완벽해 보여도 결국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자기의 생각은 논리적으로 말하되, 다른 사람의 의견에 대한 반박은 자제해야 한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논쟁하거나 반박하면 상대를 이길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헛된 승리다”라고 말했다. 냉철한 논리를 내세워 오류를 지적하고 상대방을 굴복시키면 이겼다는 자부심이 들지 몰라도, 상대방의 마음이 떠나버리면 결코 이긴 게 아니다. 논쟁에서 이겨도 상대방의 마음을 잃으면 결국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생각은 틀렸다는 전제로 반박에 몰두하면 논쟁에 빠지기 쉬우므로,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려는 자세도 필요하다. 논리적으로 말하는 데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자칫 말투가 차갑고 딱딱해질 수 있다는 점도 유념하여 부드러운 말투를 사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파토스: 감정을 공유하기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므로 상대방을 설득할 때는 논리와 함께 감정적인 교류 즉, 파토스(Pathos)가 더해져야 한다. 주장이 한 치 오류 없이 논리적인 것과 그 주장을 듣는 사람 마음이 바뀌는 것은 별개다. 사람은 타인의 논리적인 주장으로 인해 자신의 사고나 신념이 틀렸다고 밝혀지면 저항하려는 심리가 발동하기 마련이고, 자신의 주장이 사리에 맞지 않더라도 그것을 더욱 굳게 하려고 반론을 지어내기도 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인간의 행동은 이성과 감성이란 두 마리 말에 이끌리는 쌍두마차다. 하지만 이성은 작은 조랑말일 뿐이고 감성은 커다란 코끼리와 같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감성 및 감정은 이성보다 영향력이 더 커서 때로는 합리적인 선택이 감정에 밀려나곤 한다. 감정이 상하게 되면 상대방의 말을 이성적으로는 납득할지 몰라도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청자의 감정이 움직여야 논리적인 설명도 받아들여진다.
타인의 감정에 다가가는 일은 ‘공감’을 통해 이루어진다. 공감은 타인의 감정과 생각, 상황을 식별하고 이해하는 능력이다. 공감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어야 한다. 들을 때는 상대방이 어떤 주장을 하건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에 앞서 우선은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상대방의 말에 반드시 동의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상대방 주장의 오류를 찾기보다는 그렇게 생각하고 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라 믿고 최대한 긍정적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귀 기울여 잘 들어주다 보면 상대방 스스로 자기의 말이 이치에 맞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도 한다.
사람은 ‘이 사람이 나를 아끼는구나. 나를 생각해 주는구나’라고 생각할 때 비로소 마음을 연다. 상대가 비난하는 태도를 보이면 자기의 뜻을 고수하며 억지를 부릴 수 있지만, 이해받고 수용된다는 느낌이 들면 상대방의 말을 받아들일 여유가 생기고 동의할 여지도 커진다.
에토스: 신뢰받는 사람 되기
에토스(Ethos)는 말하는 사람의 성품을 뜻한다. 아무리 정연한 논리를 내세우더라도 청자가 화자를 신뢰할 수 없다면 설득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청자가 전적으로 화자를 신뢰하고 호감을 가질 때 설득은 보다 용이해진다. 같은 말이라도 좋아하는 사람이 말하면 더 믿음이 가고 공감하게 되는 이유가 이런 이치 때문이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신뢰하면 그 사람의 논리가 다소 빈약하더라도, 나의 감정과 조금은 괴리가 있더라도 그 말에 기꺼이 따를 수 있다. 따라서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신뢰를 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타인의 신뢰를 얻으려면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면 안 된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은 아무렇지 않게 무단투기를 한다면 누구도 그의 말을 듣지 않을 터, 자신이 한 말이나 약속은 반드시 지키도록 노력하는 모습을 보일 때 진실성과 진정성을 보여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거짓말이나 부정적인 말을 자주 하거나 쉽게 분노하는 모습도 ‘못 믿을 사람’이라는 인상을 준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말로 희망을 주고 좋은 에너지를 전할 때 주변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신뢰감을 얻을 수 있다.
신뢰가 유지되는 관계에서는 어쩌다 실언하더라도 가벼운 말실수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고, 반대되는 의견을 말하더라도 호감이 거부감을 낮춰 귀담아듣게 된다.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면 자신이 어떤 식으로 말하는지, 공감 능력이 어떤지 진단해 보는 것도 좋지만, 평소 신뢰를 얻을 만한 모습을 보였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신뢰 관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 공들여야 하고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한 차례 설득을 위해 평소와 다른 모습을 꾸며내거나 단시간에 자기 의견을 따르게 하려 권위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관계는 망가지기 쉽다. 더디더라도 꾸준히 믿을 만한 행동을 보여주며 호감을 쌓아야 한다. 공들여 쌓은 신뢰는 원활한 소통을 이루는 연결고리가 되고, 애써 설득하지 않고도 설득을 가능하게 만든다.
좋은 설득은 상대방에게 ‘스스로 올바른 선택을 했다’라는 만족감을 준다. 서로가 만족스러운 결과에 이르려면 타인의 권리와 존엄성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로고스·파토스·에토스를 동원하여 상대방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도와야 한다. 설득은 승패가 달린 싸움이 아니라 서로 공존하는 수단이다. 단순히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려는 기회로 삼기보다는 신뢰를 기반으로 지속적인 유대를 이어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애를 쓴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법은 없다. 상대방 역시 자아를 지닌 존재이며, 자유의사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상대방이 당장 마음을 바꾸지 않더라도 체념하거나 노여워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의 설득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고 사안에 따라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음을 기억하자. 설득은 상대방의 마음 문을 억지로 열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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