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고통 없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 고통을 피하고자 하는 마음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다. 그러나 살아가는 동안 고통은 불가피하다. 몸은 물론이거니와 마음도 그렇다. 삶이 늘 행복하면 좋으련만 살면서 겪는 다양한 일들 속에서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스스로 상처 입기도 한다.
마음의 상처는 우울, 불안, 원망, 수치심, 분노 등의 감정으로 나타난다. 손끝만 살짝 베여도 손가락이 계속 신경 쓰이고 일상이 불편해지듯, 마음 한곳에 생긴 상처는 평온한 생활에 지장을 준다. 상처는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저절로 없어지기도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깊이 잠복해 있다가 시시때때로 고통을 주기도 한다. 상처가 깊어지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비관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따라서 마음의 상처를 관리하는 일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원망과 미움으로 불행한 삶을 살기보다는, 연고를 바르고 반창고를 붙여 상처를 치유하듯 마음의 상처를 다루는 방법을 터득해 자신과 주위 사람을 지키는 편이 현명한 대처일 것이다.
마음의 고통, 신체 고통과 다르지 않다
마음의 고통과 괴로움은 종종 통증, 경련, 식욕 저하, 불면증 등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난다. 이를 ‘신체화’라 하는데, 심리적인 문제가 신체적으로 표출되는 방어기제1)를 뜻한다. 아파서 학교나 회사에서 조퇴하면 거짓말처럼 낫는 이유도, 하고 싶지 않은 일에서 해방되어 심리적으로 편안해져 신체적 증상이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우리 뇌는 마음의 고통과 신체의 고통을 느끼는 영역이 겹쳐 이 둘을 크게 구분 짓지 않는다. 2003년 나오미 아이젠버거 UCLA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은 피실험자들에게 컴퓨터 게임을 하게 한 뒤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을 촬영했다. 게임은 세 사람이 공을 주고받는 것이었는데, 사실 피실험자 외에 두 사람은 컴퓨터로 설정된 가상의 인물들이었다. 가상의 인물들은 점차 피실험자에게 공을 건네지 않고 둘이서만 공을 주고받았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로부터 소외되었다고 느낀 피실험자의 뇌에서 신체 통증을 담당하는 영역이 활성화되었다. 또, 2011년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에드워드 스미스 박사는 “이별을 경험한 40명의 피실험자에게 옛 연인의 사진을 보여주었을 때 팔에 뜨거운 감각을 느낄 때와 같은 부위가 활성화되었다”는 연구 결과를 통해 “이별의 아픔은 신체의 아픔과 생리적으로 비슷하다”고 밝혔다.
이처럼 몸과 마음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몸을 다치지 않더라도 심리적인 이유로 통증을 겪고 건강에 해를 입을 수 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알아차리기 어렵고 소홀히 여기기 쉽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이어서 사람마다 느끼는 고통의 정도도 다르다. 마음을 보는 눈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때론 다른 사람의 고통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고, 그 사람이 너무 예민한 탓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상처는 그 사람이 타고난 기질과 그간 살아오면서 경험한 삶을 토대로 형성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올라오는 감정을, 다수의 의견이나 보편적인 기준을 잣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의 상처가 별일 아닌 듯싶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자. ‘아프고 싶어서 아파하는 사람 없다’고.
마음을 안아주는 법, 공감
사람에게는 친화욕구가 있어서 아프고 힘든 상황에 놓이면 가까운 사람, 특히 가족으로부터 이해받기를 원한다. 가족에게 아픈 마음을 이야기해도 수용되지 않고 공감받지 못하거나, 자신의 고통이 충고와 조언, 평가, 판단의 대상이 될 때 상처와 외로움은 가슴 깊이 사무친다.
아픈 마음을 치유하는 가장 탁월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공감이다. 이해와 지지, 격려, 위로 등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공감이 선행되어야 한다.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잡아주는 등 공감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시작된다. 그렇게 상대방이 감정을 충분히 풀어낼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잘 들어주면 된다. 상대방과 똑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아도 괜찮다. 공감한다는 것은 상대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 그럴 수 있겠다고 수용하는 것, 그 느낌이 잘못되었다고 규정하거나 부정하지 않는 것이다.
공감이 빠진 말, 판에 박힌 말은 아무리 긍정적이어도 듣는 이의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상처 입은 마음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득 차 있는데, 부정적인 감정을 비워낸 후라야 상대방의 말을 담을 여유가 생긴다. 공감은 부정적인 감정을 흘려보내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부정적인 감정은 타인에게 전이되기 쉬우므로 공감할 때는 상대의 부정적인 감정에 덩달아 휩싸이지 않도록 의식하며 침착한 태도로 자신의 마음을 잘 지켜내야 한다.
마음을 움직일 에너지가 부족할 뿐,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대부분 스스로 알고 있고 마음의 에너지가 채워지면 앞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굳이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마음의 에너지를 채워주는 말은 훌륭한 조언이나 옳은 말이 아니라 공감이 피워낸 따뜻한 말이다. 나를 믿어주는구나, 이해받고 있구나, 혼자가 아니구나 하는 느낌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긍정으로 마음 건강 지키기
가족의 아픈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부터 건강하게 지켜야 한다. 살아가는 동안 마음의 평정이 깨어지는 상황은 끊임없이 찾아온다. 그때마다 감정적으로 반응하거나 상처가 두려워 방어에 급급하면 삶은 고통의 연속이 된다. 같은 균이라도 면역력이 높은 사람의 몸에는 해를 끼치지 못하듯 타인의 말과 행동이 주는 여파는 자신의 마음 상태가 어떠한가에 따라 달라진다. 언제든 아픔과 고통이 있을 수 있다는 개방적인 자세와 긍정적인 태도가 건강한 마음을 만든다.
불쾌한 감정을 해소하지 않고 앙금처럼 마음에 계속 담아두면 불쑥불쑥 문제를 일으킨다. 상처로 인한 피해의식으로 자신을 지나치게 보호하면 누군가 나쁜 의도 없이 한 말에도 과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자신의 상처와 무관한 이에게 또 다른 상처를 입혀 관계를 망치기도 하고, 상처 입은 자신을 세상이 알아주고 배려해 주기를 기대하는 자기 연민에 빠지기도 한다. 결국 자신에게 계속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이 마음에 남을 때, 곱씹으면 더욱 각인되지만 그를 이해하려고 하면 섭섭함이 줄어든다. 관계란 혼자가 아닌 상대와 연결되어 형성되는 것이므로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상대방의 입장도 헤아려야 한다. 상황을 과장하지 않고 단순하게, 조금은 둔감하게 바라보고 ‘뭔가 이유가 있겠지’라며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 하면 상대방은 오롯이 가해자가 되지만 ‘그와 부딪혀 상처를 받았다’ 하면 상대의 의도성은 옅어지고 자신에게 책임이 없는지 돌아볼 틈이 조금은 생긴다.
컵에 떠다니는 이물질을 하나하나 건져내려 하면 이물질에 더욱 집중하고 몰입하게 된다. 그러나 새로운 물을 계속 부으면 흘러넘치는 물과 함께 이물질은 저절로 제거된다. 들어서 좋았던 말, 함께 기뻐했던 일 등 긍정적인 기억을 떠올려 부정적인 기억을 흘려보내자. 고통을 흘려보내는 과정을 거치면서 마음은 성장하고 단단해진다. 아프고 힘든 마음을 가족에게 토로해 공감과 위로를 받는 것도 좋지만, 부정적인 감정을 전함으로써 가족이 받을 영향을 고려해 스스로 해결하는 힘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가족은 서로의 마음을 달래주는 사이면서 한편으로는 가장 상처 주기 쉬운 관계다. 허물없고 편하다는 이유로, ‘이해해 주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무심코 한 언행이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사이를 벌려 놓는다. 상처 입은 마음을 달래주기에 앞서 나의 언행이 소중한 가족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주의하자.
가정은 세상에서 받은 상처로 인해 아프고 힘들 때 따뜻한 사랑으로 위로받는 곳이 되어야 한다.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내고 웃는 가족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그 마음을 안아주고 토닥토닥 위로해 주자.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그 감정이 충분히 수용되는 경험은 인생에 큰 힘이 된다. 사람은 자신을 지지해 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어려운 순간을 극복하고 자신감을 회복하여 마음의 상처를 딛고 우뚝 일어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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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렵거나 불쾌한 정황이나 욕구 불만에 직면할 때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하여 자동적으로 취하는 적응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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