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병장수(無病長壽)’.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건 인간의 오랜 염원이다. 건강한 신체는 모든 활동의 전제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태어나 성장하고 늙는 동안 각종 질병과 사고에 노출된 채 살아간다. 이는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의학 기술의 발달로 장수 시대가 도래되었어도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이치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병들고 아프다는 건 누군가의 돌봄이 절실한 상황에 놓인다는 걸 의미한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암, 치매, 중증 외상, 심·뇌혈관질환 등으로 어느 순간 신체의 불편을 겪을 수 있다. 미국 전 대통령의 부인 카터 여사는 말했다. “이 세상에는 간병인이었던 사람, 현재 간병인인 사람, 간병인이 될 사람, 간병인이 필요한 사람, 이렇게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그의 말처럼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우리는 누군가를 돌보거나 돌봄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주로 가족이 된다.
가족 구성원 중 한 사람이라도 아프면 가족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 모빌을 이루는 추가 하나라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나머지 추들을 조절해 균형을 맞춰야 하듯, 한 사람이 병환으로 신체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나머지 가족이 그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 그러한 상황은 대개 사전 준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닥치고, 간병 가족은 총체적인 어려움을 경험한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다
아이가 아프면 잘 먹지 않고 보채며 조금만 수틀려도 짜증을 낸다. 장성한 어른이라도 신체의 고통 앞에서는 쉬 무너지기 마련이다. 몸이 아프고 병들면 신체가 자유롭지 못한 불편함도 문제지만 심리적·정신적으로도 약해져 상실감과 서러움, 위축감, 의욕 저하, 외로움 등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이른다. 감정조절은 뇌의 능력 중 하나인데,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신체적으로 고통을 받으면 그 능력이 떨어져 감정 기복이 심해진다. 따라서 사람은 아플 때 근본적인 치료와 함께 심리적 안정까지 필요하게 된다.
신체가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불안과 두려움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표출되기 마련이다. 발병 원인이 누군가에 의해 심적 고통을 겪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분노하거나, 그간의 식단을 문제 삼거나, 자신의 생활 습관을 탓하며 자책하기도 한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질병에 영향을 미친다는 과학적 근거는 있어도, 사람이 아프고 병드는 일이 항상 인과 관계를 따르지는 않는다. 질병 발생 원인은 매우 복잡해 한 가지로 설명하기 어려우므로, 근거 없는 추측으로 판단하여 자신 혹은 누군가를 원망하는 일은 의미 없다.
아픔은 스트레스를 먹고 산다는 말이 있다. 신체 치료만 아니라 마음 관리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몸이 아프면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쉽지 않지만, 자꾸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면 스트레스를 멀리할 수 있다. 일부러라도 크게 웃기, 감사 일기 쓰기, 가족과 즐거운 대화 나누기, 행복했던 기억 떠올리기 등은 내면의 에너지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지나친 두려움과 괴로움에 매몰되지 않도록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정서적인 안정을 누리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길이다. 발병을 계기로 생활 습관과 사고 습관을 개선하면 그전보다 오히려 건강해지기도 한다.
아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은 대상자의 몸과 마음을 보듬어 살피는 일이다. 그러려면 돌보는 대상에 대해 많이 알아야 한다. 간병의 첫걸음은 대상자의 속성을 이해하는 것. 앓고 있는 병에 대해서만 아니라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할 때 즐거운지, 싫어하는 건 무엇인지, 그때그때 기분은 어떠한지 등을 물으며 환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일은 필수다.
돌보는 사람으로서 환자의 손과 발이 되어 불편함을 덜어주는 건 좋지만, 환자에 대한 책임감이 과해 지나치게 헌신하거나 모든 일을 다 해주는 건 옳지 않다. 환자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환자는 무력감과 통제당하는 느낌을 받는다.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해야 환자의 자신감이 오른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머리와 몸을 사용함으로 심신 기능도 높일 수 있다.
환자의 마음에는 가족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과 의지하고 싶은 마음, 이렇게 양가감정이 존재한다. 그런 이중적인 마음 때문에 말과 행동이 불일치하거나, 자신의 속내를 알아주길 바라며 부정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표면적인 말과 행동은 진짜가 아닐 수 있다. 그 속에 숨은 진심을 파악하여 마음을 받아주고 원하는 방식대로 도와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보호자는 아픈 사람 앞에서 웃거나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곤 한다. 환자의 건강이 호전되지 않으면 더더욱 죄책감과 불안감을 가진다. 그러한 감정으로 마음이 무겁고 안색이 어두우면 환자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므로, 돌봄에 대한 한계를 인정하고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부담만 져야 한다. 긍정적인 마음과 밝고 활기찬 모습이 환자에게 좋은 기운을 전한다.
아픈 사람에게 가족의 사랑은 가장 효과적인 치료제다. 환자는 정서적으로 취약한 상태이므로, 일반적인 가족 구성원 간의 교류와는 다른 지지와 교감이 필요하다. 환자가 퉁명스럽게 말하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상냥하게 대응하고, 많은 말을 해주기보다는 환자가 힘겨운 마음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도록 들어주는 것이 좋다. 그런 모습을 통해 ‘비록 고통을 대신해 줄 수는 없지만, 힘든 당신 곁에서 함께하며 힘이 되겠다’라는 메시지가 전달되어야 한다. 환자에게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는 것보다 중요한 건 가족이 자신을 걱정하고 쾌유를 간절히 바란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다. 심리적으로 지지해 주는 사람의 존재는 실제로 환자의 통증을 감소시키는 효능이 있다.
* 아픈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들
•“어쩐지 너무 일만 하더라니.” “내가 짜게 먹지 말랬잖아.” “평소에 운동 좀 하지.”
→ 몸을 돌보지 않아서 병에 걸렸다는 뉘앙스는 아픈 사람을 탓하는 말로 들린다.
•“좀 움직여.” “누워만 있으면 더 아파.” “그런 걸 먹으면 어떡해?”
→ 질책하고 충고하는 말은 아픈 사람을 더 위축되게 만든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어?”
→ 현실을 부정하며 분노와 슬픔을 토로하는 말은 좌절감을 더한다.
•“뭐 그 정도로 힘들다고 그래?” “다른 사람은 안 그러는데 당신은 왜 그래?”
→ 고통을 몰라주거나 남과 비교하는 말은 외로움을 느끼게 한다.
돌보는 사람도 보살핌이 필요하다
돌보는 사람의 역할은 환자의 치료가 잘 진행되고 있는지 관찰하고 의료진과 상의하는 일, 식사를 준비하고, 약을 제때 챙겨주며, 진료 예약 및 병원 이동, 씻기고 단장하는 일까지, 매우 광범위하다. 병시중은 물론 가사 노동과, 환자의 대화 상대가 되어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등 감정노동까지 동반한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가족을 돌본다는 선한 의도로 시작하더라도 간병은 결코 녹록지 않은 일이다.
특히 오랜 시간 전적으로 간병에 매달리면 소진증후군(Burnout Syndrome)1)을 겪을 수 있다. 환자를 돌보느라 자신의 건강은 돌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몸과 마음이 지치기 쉬우며, 자신의 생활은 뒷전으로 밀려나 주변과 단절되고 삶의 질이 낮아지기도 한다. 그러한 요소는 돌보는 사람과 환자 모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괴로운 사람은 괴로운 사람을 돌볼 수 없는 법. 무조건적인 헌신과 희생만이 간병의 정답은 아니다. 돌보는 사람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아픈 사람의 건강을 도울 수 있다. 간병을 도맡아 하더라도 자신의 삶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꾸준히 이어가며, 간병에서 잠시라도 해방되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가져야 간병 스트레스에 대처할 에너지가 생성된다.
그러려면 가족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가족 구성원들은 각자 보호자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을 나누거나 기간을 정하여 간병을 도맡은 가족이 지치지 않게 해야 한다. 돌봄에 주력하는 가족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간병에 어려움이 닥치면 함께 해결하도록 지원하되, 훈수를 두거나 책망하지 않아야 한다. 간병에 대한 의견 차이가 있다면 서로 배려하는 마음으로 대화하여 좋은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가족을 직접 돌볼 여건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체계적인 치료와 돌봄이 가능한 전문 시설의 도움을 받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미국 텍사스대학교 연구팀은 가족을 간병하는 사람 약 4,800명을 추적 관찰한 결과, 간병인은 비간병인보다 더 오래 살고 어려움과 시련에 대처하는 능력이 높다고 평가되었다. 또한, 미국 버팔로대학교 연구팀은 가족을 적극적으로 간병하면 마음이 건강해진다고 밝혔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적지 않은 수고와 헌신을 요함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가족을 돌보는 일이 당사자에게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즐겁고 기쁜 순간도 함께하지만 아프고 병들더라도 함께하는 것이 가족이다. 살면서 추구했던 일들이 시간이 흐른 뒤에는 덧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가족은 마지막까지 곁에 남는다. 가족을 위해 자신의 삶 일부를 할애해야 하는 현실과 마주했을 때 이를 인정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사랑의 힘으로 서로를 돌보고 보살핀다면 아프고 병드는 삶의 과정에서도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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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가지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정신적 피로로 무기력증, 자기혐오 등에 빠지는 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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