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에 이르는 '기린의 언어'

사실에 근거하여 느낌과 함께 욕구를 표현하고, 요청하는 식으로 말하는 비폭력 대화.
우리는 이따금 상대에게 말할 때 가시 돋친 말로 표현하곤 한다. 윽박지르거나 욕설을 섞지 않더라도 말속에 판단, 비교, 비난, 강요가 포함되면 언어폭력이 될 수 있다.

미국의 마셜 로젠버그 박사는 상대에게 화를 내거나 상처 주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전달하는 평화로운 대화법, ‘비폭력 대화(NonViolent Communication, NVC)’를 고안했다.

이는 상대도 나와 같은 사람, 소중한 존재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관찰’, ‘느낌’, ‘욕구’, ‘부탁’. 4단계의 과정으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관계를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상대방과 질적인 유대관계를 형성할 수 있고, 양쪽이 원하는 바를 모두 만족시키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이따금 무엇이 필요하거나 원하는 바를 상대에게 말할 때 가시 돋친 말로 표현하곤 한다. 모욕이나 굴욕으로 한 사람의 존엄성과 안전을 해치는 과도한 말을 ‘언어폭력’이라 하는데, 윽박지르거나 욕설을 섞지 않더라도 말속에 판단, 비교, 비난, 강요가 포함되면 언어폭력이 될 수 있다. 그런 식의 말은 상대방의 가슴에 비수를 꽂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변명과 회피, 또는 방어나 반격에 에너지를 사용하도록 유도한다. 결국 대화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만다.

미국의 마셜 로젠버그 박사는 상대에게 화를 내거나 상처 주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전달하는 평화로운 대화법, ‘비폭력 대화(NonViolent Communication, NVC)’를 고안했다. 온순한 초식동물인 기린에 빗대어, 긴 목으로 주위를 살피고 큰 심장으로 상대를 품는다는 의미에서 ‘기린의 언어(Giraffe’s Language)’라고도 한다.

기린의 언어는 상대도 나와 같은 사람, 소중한 존재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관찰’, ‘느낌’, ‘욕구’, ‘부탁’. 이 4단계의 과정으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관계를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말하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다. 기린의 언어를 통해 상대방과 질적인 유대관계를 형성할 수 있고, 양쪽이 원하는 바를 모두 만족시키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관찰: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사실대로 보기


싱크대에 씻지 않은 그릇이 있고, 바닥에 물건들이 널려 있으며, 침대에 이불이 구겨져 있는 집을 방문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자동으로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주인이 게으르네. 손 하나 까딱하기 싫은가 봐.’ 다른 사람에게도 “그 사람은 너무 게을러”라고 전하기 쉽다. 그렇다면 이 말은 사실일까, 아닐까.

사람은 저마다 성장 배경, 가치관, 경험 등으로 형성된 자신만의 잣대가 있다. 어떤 대상을 접하면 자신만의 잣대로 평가한 뒤 평가한 그것을 사실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본 건 잊어버리고 평가한 것만 기억하곤 한다. 평가는 주관적이므로 사실과 다르다. “그 집 싱크대에는 씻지 않은 그릇이 있었고, 바닥에 물건들이 널려 있었으며, 침대에 이불이 구겨진 채로 있었어” 하면 사실이지만 “그 사람은 너무 게을러” 하면 사실이 아닌 평가다.

자동으로 떠오르는 생각으로 평가하고 판단하면 소통에 문제가 생긴다. 평가로 인해 ‘틀리다’, ‘나쁘다’, ‘비정상이다’라는 결론에 이르면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게 되고, 그 말을 듣는 상대방은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므로 대화를 편안하게 이어가려면 평가가 아닌 관찰에 기반한 사실을 말해야 한다. 관찰은 색안경을 벗고 상대방의 행위 그 자체를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우리는 평가와 관찰을 섞어 사실처럼 말하는 데 익숙하므로 둘을 구분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주의를 기울이면 평가인지 사실인지 알아챌 수 있다. 나의 생각과 말이 평가라는 점을 알아차리는 순간부터 변화는 시작된다. 상황과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고, 분별력이 생기며, 평가할 때보다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로 인해 말과 행동도 달라지고 상대방과의 관계도 달라진다.


느낌: 자극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표현하기


느낌이란 어떤 자극에 대한 몸의 감각 혹은 마음에 일어나는 반응이다. 느낌과 생각은 서로 연결되어 영향을 주지만 엄연히 다른 영역이다. 느낌은 감각에서 나오고, 생각은 사고 작용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우리는 생각을 느낌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무시당한 느낌이다”, “공격받은 것처럼 느껴진다”라는 표현은 느낌을 말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생각이다.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한 평가, 해석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무시당했다는 생각 이면에는 서운한 마음이, 공격받았다는 생각 이면에는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한 마음이 곧 느낌이다.

생각을 느낌으로 인식하면 사실이 왜곡되고 감정을 통제하기 어려워진다. 느낌은 경보기처럼 마음이 보내는 신호이기 때문에 조절하기 어렵지만, 생각은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바뀐 생각에 따라 감정도 달라진다. 생각과 느낌을 구분할 줄 알아야 생각이 감정을만들어 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고, 감정을 유발하는 생각을 찾아내어 더 이상 가지가 뻗어 나가지 않도록 조절할 수 있다. 생각의 가지가 뻗어 나가도록 내버려두면 넘겨짚고 오해하고 선입견을 품는 등 타인을 괴롭히고 자신도 괴로워진다.

자신의 느낌을 알아차리고 진솔하게 표현하면 다른 사람과 정서적으로 연결되어 갈등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가령 사춘기 아이가 방문을 세게 닫고 들어갈 때 “어디서 배워먹은 버릇이야? 조금 컸다고 엄마를 무시해?”라고 화를 내며 비난하면 아이는 더 거칠게 반응할 수 있다. 하지만 “네가 문을 세게 닫고 들어가니 엄마는 당황스럽고 슬퍼”와 같이 사실과 느낌을 전하면 대화가 부드러워진다.


욕구: 숨은 마음, 원하는 것 찾기


먹고, 잠자고, 일하고, 배우고, 누군가를 만나는 등 사람이 하는 모든 행동의 이면에는 욕구가 있다. 식욕, 수면욕, 생존의 욕구, 성취욕, 사회적 욕구 등 이러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사람은 말하고 움직이며, 계획하고 선택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한 표현인 셈이다. 욕구가 충족되면 긍정적인 느낌을,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부정적인 느낌을 경험하게 된다. 느낌은 욕구의 충족 여부에 달렸고, 욕구는 느낌의 근원인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이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자극이 될 수는 있어도 원인은 아니다. 감정의 원인이 상황이나 상대방에게 있다면 같은 상황, 같은 상대일 때 나오는 느낌도 같아야 한다. 하지만 같은 상황, 같은 상대라도 매 순간 나의 욕구가 충족되었는지에 따라 느낌과 감정이 결정된다.

가령 아이가 부주의한 행동으로 집에 있는 도자기를 깨뜨렸을 때, 평소 아끼던 도자기였다면 엄마는 속상하고 화가 날 수 있다. 하지만 마음에 안 드는데 어쩔 수 없이 보관하던 도자기였다면 속이 후련할 것이다. 전자는 가치 있는 물건을 소유하길 원하는 엄마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데서 비롯된 부정적인 감정이고, 후자는 불필요한 물건은 정리되길 원하는 엄마의 욕구가 충족된 데서 비롯된 긍정적인 감정이다.

우리는 자신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나오는 부정적인 감정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는 데 익숙하다. 느낌 혹은 감정이 내 안의 욕구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인지하면 그에 대한 책임도 자신에게 있음을 인정할 수 있다. 따라서 불편한 마음이 들면 상황이나 상대를 탓하기보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이지?’ 하고 감정의 뿌리인 욕구를 찾아야 한다.



요청: 바라는 것을 상대방이 이해하기 쉽게 말하기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 부정적인 느낌이 든다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상대에게 요청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욕구를 진솔하게 말하는 대신 감정을 표출하거나 비난하는 방식으로 표현하고는 상대가 나의 욕구를 정확히 파악해 알아서 행동하기를 기대하곤 한다. 예컨대, 배우자가 가족에게 관심을 가지고 애정을 표현해 줬으면 하는 욕구를 “친구 남편은 가정적이라던데, 당신은 이기적이야. 속에서 천불이 나”라고 말하는 식이다. 이처럼 비난과 비교, 부정적인 감정 표출 등 간접적인 방식으로는 내가 원하는 바를 전달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상대에게 부정적인 느낌이 들게 해 소통을 망친다.

요청할 때는 원하는 바를 구체적이고, 긍정적이며, 의문형으로 부드럽게 말해야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명료하게 요청할 수 있다. “집안일 좀 같이 해요”는 추상적이고, “쓰레기 버리는 일은 당신이 맡아 주면 좋겠어”는 구체적이다. “밖으로 겉돌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는 부정적이고 “일요일만큼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 좋겠어요”는 긍정적이다. “집에 일찍 들어와요”는 명령형이고, “퇴근하면 곧장 들어오고 혹시라도 늦으면 연락해 줄래요?”는 의문형이다.

하지만 이 같은 방식으로 말하더라도 상대방의 상황이 여의치 못하거나 상대방의 욕구와 충돌하는 경우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 요청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섭섭해하거나 비난하거나 응징을 암시하면 강요가 된다. 진정한 요청은 설령 거절당하더라도 수용하고 기꺼이 동의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존중하는 마음이 전달되고 다른 안을 제시할 수 있다.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해도 해결할 여지가 생긴다.



기린의 언어는 충족되지 않은 욕구가 무엇인지 살펴 상대에게 요청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풀어나가는 것이 핵심이다. 나에게 욕구가 있듯 상대에게도 욕구가 있음을 인정하고 서로의 욕구를 충족할 해결책을 찾아 만족에 이르는 과정이다. 그렇게 서로 기분 좋게 합의한 해결 방안은 지켜질 확률이 높다.

관찰, 느낌, 욕구, 요청의 단계를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생략하거나 순서를 바꾸는 식으로 유연하게 적용하면 된다. 이 방법을 익히면 습관적이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대신, 생각하고 말하는 방식을 선택하는 능력이 길러진다. 그리고 상대방의 입에서 나오는 가시 돋친 말이 그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데서 나오는 서투른 표현이라는 걸 이해하게 된다.

‘기린의 언어’와 상반된 화법을 ‘자칼의 언어’라고 한다. 판단과 평가, 강요와 명령으로 상대에게 상처 주는 말을 뜻한다. 사랑을 전하고 싶어도 자칼의 언어로 말하면 사랑이 올바로 전달되기 어렵다. 자칼의 언어로 말하지 않으려면 자신이 하는 말에 깨어 있어야 한다. 의식적으로 기린의 언어를 사용함으로 우리는 상대에게 상처 주지 않고 사랑의 마음을 전할 수 있다. 우리 안에 있는 기린과 자칼,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둘 중 한쪽이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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