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새소리를, 고양이는 고양이 소리를, 원숭이는 원숭이 소리를 낸다. 동물은 각기 내는 소리를 통해 서로를 인식하며 살아간다. 사람 역시 소리를 낸다. 사람이 내는 소리를 ‘음성’ 또는 ‘목소리’라 하는데, 목소리에는 다양한 정보가 담겨 있어 다른 모든 소리와 구별된다. 사람들이 어디선가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본능적으로 귀를 기울이고 그 소리의 의미를 파악하려고 하는 이유이다.
의사소통의 중요한 매개체이자 인류가 상호작용하여 문명의 발달을 이룰 수 있었던 원동력은 말, 곧 언어다. 인간의 가장 강력한 도구인 언어적 의사소통은 기본적으로 목소리가 있기에 가능하다. 목소리는 언어적 요소의 토대이면서 비언어적 요소로도 분류된다. 억양, 속도, 어조, 음정, 음색 등으로 이루어지는 목소리는 비언어1) 중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오늘날 메신저와 문자메시지가 편리한 통신 수단으로 일반화되었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인간관계가 틀어지고 감정이 상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목소리로 전하는 감정의 교류가 그만큼 중요하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가장 효과적인 의사소통 수단은 목소리다. 우리는 평생 목소리를 이용해 타인과 대화하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므로, 목소리를 어떻게 사용할지 한 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목소리는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악기
‘목소리는 제2의 얼굴’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사람을 직접 보지 않고 목소리만 들어도 누구인지 쉽게 알아맞힐 수 있다. 기도 및 성대의 크기와 형태 등 신체적 조건과 공명 현상에 따라 제각기 다른 소리를 내고, 이는 개인을 식별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주파수 분석 장치를 이용해 목소리를 시각화하면 사람마다 고유한 띠 모양의 패턴, 즉 ‘성문’이 나타난다. 손가락의 지문처럼 성문도 신원 확인에 쓰인다.
목에는 음식이 지나가는 식도와 공기가 지나가는 기도가 있다. 기도의 상단에는 약 4cm 길이의 후두라는 기관이 있는데, 폐에서 나온 공기가 후두 안에 있는 얇은 근육막인 성대를 통과하면서 발생하는 진동으로 목소리가 만들어진다. 이 때문에 후두를 ‘소리 상자’라고 한다. 목소리가 나오기까지 성대는 1초당 100회 이상 진동하고, 후두의 50여 개 근육을 비롯해 상반신에 있는 근육 400여 개가 동원된다.
성대에서 나는 소리는 혀와 입술을 통해 구체적인 언어로 조성되어 입 밖으로 나간다. 동물에게도 후두, 성대, 비강 같은 기관이 있지만 인간만이 성대에서 나는 소리를 다듬어 의미를 지닌 언어로 배출할 수 있다. 대부분의 동물과 달리 똑바로 서서 두 발로 걷는 인간은 곧은 척추 위에 두개골이 자리한 까닭에 발성을 위한 공명강이 확보된다. 이렇게 신체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목소리를 낸다. 음조의 다양함에 있어 인간의 목소리에 비길 악기는 없다. 인간의 목소리는 자유자재로 소리를 낼 수 있는,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악기인 셈이다.
말보다 많은 말을 하는 목소리
청각은 시각보다 빠른 속도로 민감하게 정보를 처리한다. 사람은 처음 만나는 사람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기도 하지만 귀에 들리는 목소리로 많은 것들을 알아낸다. 한 채용 포털 사이트에서 인사담당자 6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면접 시 지원자의 목소리가 채용에 영향을 주느냐’라는 질문에 93%가 그렇다고 답했다. 목소리가 첫 대면에서 그 사람의 성격을 짐작하게 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목소리는 사람의 인상과 이미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목소리가 크고 우렁차면 외향적인 인상을, 목소리가 작고 발음이 부정확하면 소심하거나 우유부단한 인상을 준다. 목소리 톤에 변화가 없으면 무뚝뚝한 인상을, 발음이 정확하고 카랑카랑하면 똑 부러지는 인상을 준다. 청중의 80%가 낯선 연설자의 목소리만 듣고 신체적, 성격적 특성을 파악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비언어 의사소통의 전문가 폴 에크만 박사는 목소리를 가리켜 감정을 전달하는 1차 신호라고 했다. 우리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에는 단지 말의 의미만 아니라 정서와 심리적 상태까지 실려 타인에게 전달된다. 마음이 즐거우면 목소리 톤이 올라가고, 불안하거나 두려우면 목이 꽉 막힌 것처럼 소리가 안 나기도 한다. 격앙되면 목소리가 커지거나 떨리는 소리가 난다.
감정의 변화에 따라 성대가 즉시 반응하여 목소리에 그대로 드러나므로, 목소리는 상대방의 기분과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이처럼 목소리는 사람의 이미지에 큰 영향을 주고, 상호 작용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목소리에도 온도가 있다
같은 선물도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받는 사람의 기분이 달라지듯, 같은 말이라도 목소리의 온도에 따라 대화의 질이 달라진다. 말의 내용이 긍정적이어도 어조가 차가우면 불만으로 전달된다. 또한 격분하여 톤이 올라간 목소리로 말하면 아무리 훌륭한 내용의 말이라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에게 저항을 불러오고 비협조적인 행동을 하게 만든다. 고성은 안전상 위급할 때나 재빨리 주의를 끌어야 하는 상황에서만 사용해야 한다. 대화 중 감정이 격해지면 한걸음 물러서서 목소리를 제어할 필요가 있다.
따뜻한 목소리는 친근감과 애정을 나타내어 듣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목소리가 따뜻하면 그 목소리에 담긴 말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 어려운 부탁이라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엄마의 다정한 목소리가 아이의 정서에 좋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미국 위스콘신대학교의 아동감정연구소에서는 아이가 스트레스 상황에 놓였을 때 엄마의 목소리만 들어도 옥시토신 수치가 높아져 안정을 찾는 등 포옹할 때와 유사한 효과가 나타나는 현상을 발견했다. 제네바대학교에서는 엄마의 목소리가 인큐베이터 치료를 받는 미숙아의 고통을 덜어준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따뜻한 목소리는 듣는 이가 설령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그 자체만으로 직접적인 포옹만큼이나 포근하고 놀라운 위력을 지닌다.
생각과 감정이 목소리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밝고 따뜻한 목소리를 내려면 평소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또, 얼굴에 미소를 지으면서 말하면 공명이 올라가 자연스레 부드럽고 맑은 소리가 난다. 눈이 마음의 창이라면 목소리는 영혼의 울림이다. 따뜻한 마음에서 따뜻한 목소리가 나온다.
‘좋은 목소리’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음색이 좋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좋은 말과 좋은 감정을 담아낸다는 뜻이다. 전자의 의미로 마음을 전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진정한 의미의 좋은 목소리란 후자의 의미처럼, 상대방이 원하는 때에 감정을 어루만져 주고 힘을 북돋는 소리, 듣는 이의 기분을 좋게 하는 소리가 아닐까.
“얼마나 힘들었니”, “그것 참 좋은 생각이다”, “네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 행복해”, “네 얘기를 듣고 싶어”…. 우리의 목소리는 누군가에게 행복과 위안을 줄 수 있다. 때로는 진심이 담긴 따뜻한 말이 특별한 음감으로 화음을 맞춰내는 아카펠라 소리보다 더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내키는 대로 내면 최고의 악기를 함부로 다루는 격이다. 내게 주어진 목소리로 가능한 한 가장 좋은 소리를 내자. 특히 소중한 가족과 대화할 때, 밝고 친절한 표정까지 가미해서.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신 고유의 악기를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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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직접적인 언어 표현을 제외한 것들. 목소리, 시선, 표정, 손동작 등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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