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떠서 밤에 잠드는 순간까지, 막대한 정보가 우리의 감각 기관을 통해 들어온다. 정보에는 ‘외부 정보’와 ‘기억 정보’가 있는데, 외부 정보가 인지 능력을 통해 처리되는 과정에서 기억 정보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는다. 기존의 정보가 새로운 정보를 해석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외부 정보를 처리하는 뇌의 활동을 쉽게 말하면, ‘생각(사고)’이다. 인간이 생각하는 동물이자, 이성적인 존재, 만물의 영장이라고는 하지만 사고 체계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생각하는 과정에서 오류를 범한다. 처한 상황이나 타인의 언행을 그릇되게 인식하여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것이다. 그러한 오류를 ‘인지 왜곡(인지적 사고 오류)’이라 한다.
인지 왜곡에는 여러 형태가 있으며, 의도와 상관없이 자동으로 발생한다. 자동 발생 하는 부정적인 감정(Automatic Negative Thoughts)이라는 뜻의 첫 알파벳을 따서 개미(ANT)라 하기도 한다. 개미, 즉 인지 왜곡은 우리의 건강과 행복을 갉아먹는다. 분노, 불안,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자존감을 취약하게 만들며, 비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게도, 대인관계에 불통과 갈등을 낳게도 한다.
사람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예외 없이 누구에게서나 발견되는 인지 왜곡은, 세상과 타인을 이해하고 대응하는 방식을 결정지어 삶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사고의 오류들을 알아두면 부정적인 사고 패턴을 파악하고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
흑백논리(Splitting)
‘흑백논리’는 어떤 상황을 두 개의 선택지로만 나누어 보려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양극단 외에 중간 지점을 용납하지 않는 편중된 생각으로, ‘이분법적 사고’라고도 한다. 기준이 객관적인 경우는 참과 거짓을 따지는 것이 문제 되지 않지만,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의미를 오로지 흑과 백, 옳고 그름, 득과 실, 성공과 실패, 아군과 적군 등 이분법적인 범주로 해석하면 생각의 폭을 좁힐 뿐만 아니라, 자신과 다른 생각을 제시하는 사람을 판단하고 미워하며 배척하게 된다.
세상에는 흑백논리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없는 일이 훨씬 많다. 시험처럼 정답과 오답으로만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흑과 백 외에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등 다양한 색상이 존재하듯, 세상일은 변화무쌍하게 돌아가고 다양한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을 가리켜 어떤 사람이라고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사람마다 다양한 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름은 틀림’이라는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유연하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흑백논리의 오류에 빠지지 않는다.
임의적 추론(Arbitrary inference)
우리는 종종 타인의 표정과 태도, 행동만을 보고 그의 마음이나 의도가 어떠하다고 판단하곤 한다. 상대가 전화를 안 받으면 나를 만나기 싫어서 피한다고 생각하거나, 아이가 말을 안 들으면 어른을 무시한다고 생각하는 식이다. 충분하고 적절한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관적으로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고 그것을 사실이라고 착각하는 것을 ‘임의적 추론’이라 한다. 임의적 추론에는 ‘내가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가정이 깔려있다. 쉽게 말해 ‘독심술’이다.
인지행동치료의 창시자인 애런 벡(Aaron Beck)은 환경이나 사건 때문이 아닌, 사건을 대하는 태도와 해석이 우울한 감정을 일으킨다고 했다. 같은 사건을 경험하더라도 태도와 해석에 따라 완전히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상대방의 언행이 무례하게 느껴지거나 서운한 마음이 들더라도 부정적인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내가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섣부른 판단을 내리기 전에 결정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믿을 만한 것인지 체크하기 등으로 임의적 추론을 막을 수 있다.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
‘확증 편향’은 자신의 가치관이나 기존의 신념 혹은 판단에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에 반하는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이다. 말하자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는 심리를 말한다. 확증 편향에 빠지면 자기의 말이 곧 정답이라고 생각해 “봐, 내 말이 맞지?”, “네가 뭘 안다고 그래?”라며 상대의 말을 배척하여 고집불통으로 비치기 쉽다. 이러한 편향에 갇혀 있으면 서로를 이해하는 교집합을 만들어내기 어렵고, 대화는 평행선만 달리다가 끝나고 만다.
누구나 자신의 주장이나 선택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화는 내 생각이 맞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방과 교집합을 만들어내기 위해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상대방이 하는 말이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적극적으로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한다고 해서 내 속에 있는 나의 신념이 사라지지 않으니, 염려하지 말고 마음과 귀를 활짝 열 때 확증 편향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혹 나의 신념이 잘못되었다면 그 과정에서 다시 생각할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기본적 귀인 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
타인의 행동이나 사건의 원인을 추론하는 것을, ‘원인의 귀착’의 줄임말로 ‘귀인’이라 한다. 누군가 컵을 깨뜨리면 ‘저런, 팔목이 아파서 컵을 떨어트렸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심성 없이 덜렁대니 컵을 깨뜨리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전자는 상황 요인을 고려한 귀인이고, 후자는 대상자의 기질로 판단한 귀인이다. 후자와 같이 타인의 행동을 추론할 때 외부적인 상황 요인 대신 성격, 동기, 능력, 태도, 기질 등 내부적인 요인에 초점을 맞추는 현상을 ‘기본적 귀인 오류’라 한다. ‘기본적’이라는 전제가 붙은 이유는 누구나 이런 오류를 쉽게 범하기 때문이다.
기본적 귀인 오류에 빠지면 여러 가지 요인을 분석하지 않고 간단한 방법으로 결정 내리기 때문에 에너지 소모가 덜하다는 장점은 있으나, 자기중심적 관점으로 오해와 편견을 불러오고 진실을 간과하게 된다. 사람마다 평소 그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으로 형성된 이미지는 존재하지만, 모든 상황의 원인으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누군가의 행동에 대한 원인을 파악할 때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음을 가정하고 외부 환경과 상황적 요인 등을 의식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필요하다.
과잉 일반화(Over-generalization)
어린아이는 자신에게 어떠한 자극을 준 사람을 기억할 때 그들의 특징도 함께 기억한다. 가령 과자를 준 사람이 안경을 쓰고 있으면 ‘아, 안경을 쓴 사람은 친절하구나’라고 생각하고, 큰 소리로 화를 내는 사람이 빨간색 옷을 입고 있으면 그 뒤로는 빨간색 옷을 입은 사람은 무섭다고 생각해 기피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렇게 하나를 기준 삼아 전체를 단정 짓는 사고방식을 ‘과잉 일반화’라 한다. 불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지나치게 일반화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른이 되어서도 유아기적 사고를 버리지 못한 채 무의식적으로 반복하곤 한다. 특히 상대방의 언행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왜 맨날 언성을 높여야 말을 듣니?”, “당신은 한 번도 나를 이해해 준 적 없어”, “모두 한통속이야” 등과 같이 ‘항상’, ‘모든’, ‘매번’, ‘절대’와 같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분노를 유발하는 생각은 과잉 일반화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경계해야 하며, 자기 생각이 옳은지 늘 점검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생각은 자유다. 생각으로 과거와 미래를 현실의 구애 없이 오갈 수 있고,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 생각이라고 무턱대고 믿어서는 안 된다. 여러 종류의 인지 왜곡이 보여주듯 우리의 인식과 판단이 늘 객관적이거나 사실이 아니므로 생각을 다룰 땐 매우 조심해야 한다. 생각이 감정을 부르고 감정이 행동을 부르고 행동이 결과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타인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거나 자꾸 부정적인 생각에 휩싸인다면 인지 왜곡에 빠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거기서 나오려면 개미의 존재를 알아차려야 한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뭘까’, ‘이런 생각이 내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와 같이 자문자답하여 내 생각이 왜곡, 오류일 수 있음을 의심해 보는 것이다. 개미를 발견하는 데 익숙해지면 내게 유익한 쪽으로 생각을 바꾸어 개미를 퇴치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삶의 질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주어진 정보와 생각의 오류를 처리하는 방식이다. 어쩌면 객관적인 사실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느냐가 행복을 가져오기도 하고 불행에 빠뜨리기도 한다. 왜곡된 사고를 반복하는 행위는 자신을 불행에 빠뜨릴 뿐,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건강하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행복을 갉아먹는 개미를 퇴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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