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트레스는 현대인의 삶을 좀먹는 불청객으로 여겨진다. 사람들은 일이 뜻대로 안 풀리면 입버릇처럼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고,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며 발병의 원인을 스트레스 탓으로 돌린다. 스트레스는 심리적, 신체적으로 겪는 어려움과 압박 등 온갖 부정적인 요소를 통칭하는 포괄적인 용어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주범이라는 평판에 걸맞게, 사람들은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면 쉽게 짜증 내고 분노하며 사소한 일에도 과민하게 반응한다.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염증을 유발하고 면역력이 저하되는 등 신체의 방어 체계가 무너져 건강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심신의 건강을 추구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스트레스를 없애야 할까?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식으로 스트레스 유발 원인을 제거함으로 스트레스를 일정 부분 해소할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는 스트레스라는 불청객을 일상생활 전반에서 마주하며, 개중에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요인들도 많다.
스트레스 없는 삶이 행복이라고 정의하는 순간 행복은 현실이 아닌 신기루가 되고 만다. 팔을 뻗어도 닿을 수 없고, 결단코 내 것이 되지 못한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도 시시때때로 발생하는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스트레스를 제거의 대상이 아닌 관리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스트레스는 뭔가 잘못됐다는 신호다?
‘스트레스’라는 단어는 ‘팽팽하게 조이다’라는 뜻의 라틴어 ‘스트링게르(stringere)’에서 유래했다. 처음에는 건축 재료가 받는 외부의 압력을 측정하는 데 사용하는 물리학 용어였다. 1936년 내분비계 생리학자 한스 셀리에(Hans Selye)가 스트레스 학설을 제창한 이래, 스트레스는 ‘적응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할 때 느끼는 심리적·신체적 긴장 상태’를 뜻하는 의학 용어가 되었다.
스트레스 상황에 맞닥뜨리면 우리 몸에서는 코르티솔과 아드레날린계 호르몬이 분비된다. 그로 인해 맥박과 혈압이 올라가 혈액이 다량 방출되고, 호흡이 빨라져 산소 공급이 늘어난다. 근육이 긴장되고 감각은 예민해진다. 스트레스 호르몬들이 각 기관의 활동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위협적인 상황을 극복할 에너지를 신속히 생산하는 과정이다.
코르티솔은 과다하거나 장시간 분비되면 인체에 해로운 영향을 주는 탓에 나쁜 물질로 오해받기도 하나, 좋고 나쁘다기보다는 우리가 받는 자극에 맞서 평형을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물질이다. 적절히 처리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미숙한 행위 때문에 스트레스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인식이 다분하지만, 스트레스는 그 어원처럼 그저 팽팽해진 상태일 뿐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스트레스 반응을 일으키는 체계는 근본적으로 바람직한 목적을 지닌다.
인간의 뇌가 정상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자극이 필요하다. 사람이 아무런 자극을 받지 않는 환경에 놓이면 오히려 스트레스를 느낀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스트레스의 힘》을 펴낸 켈리 맥고니걸 심리학 박사는 스트레스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건강을 해친다고 했다. 스트레스 자체보다는, 스트레스가 나쁜 것이고 건강에 해롭다는 믿음이 스트레스 요인과 결합할 때 심신이 손상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결론이다.
자기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대상은 스트레스 요인이 되지 않는다. 바꿔 말하면, 어떠한 요인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느낀다는 것은 그 안에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가치를 부여하는 무언가가 내포되어 있음을 방증한다. 따라서 스트레스를 경험한다는 건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과 같다. 이 사실을 염두에 두면 스트레스를 좀 더 유연하게 다룰 수 있다.
스트레스 관리의 핵심, 요인과 반응 구분하기
스트레스 경험은 요인, 해석, 반응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흔히 ‘스트레스’라는 용어는, 자극을 주는 요인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감정, 신체 반응까지 아우르는 개념으로 통용된다. 그러나 요인과 반응은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 압박을 가하는 자극은 ‘스트레스원’, 그 자극에 의한 반응이 ‘스트레스’다. 스트레스원과 스트레스를 혼용하면 타인이나 상황이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준다’고 믿게 되고, ‘스트레스를 주니까 받는다’고 생각해 스트레스 관리를 주도적으로 할 수 없게 된다.
요인과 반응을 구분함으로써 둘 사이에 해석이 자리할 여지가 생기는데, 이는 스트레스 관리의 핵심이다. 동일한 스트레스원이라도 대처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스트레스 반응은 스트레스원 그 자체가 아니라 당사자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인식하느냐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외적인 자극이 자신을 괴롭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심리적 요인인 경우, 스트레스 반응이 자신의 뇌에서 시작될 확률이 크다.
스트레스 연구의 권위자인 리처드 라자루스 박사는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요인보다는 상황에 대한 주관적 평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스트레스 요인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유스트레스(eustress)로 작용할 수도 있고 디스트레스(distress)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디스트레스는 심리적 고통이 동반되는 스트레스를, 유스트레스는 ‘좋은’을 뜻하는 그리스어 접두사 ‘eu’를 붙여 문자 그대로 ‘좋은 스트레스’를 의미한다. 당장은 부담스러워도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드는 성장 동력으로, 맞닥뜨린 상황을 극복하는 능력을 향상시켜 긍정적인 결과로 이끄는 유익한 스트레스다.
스트레스원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건 단순히 기분만이 아니다. 실제 몸에서 일어나는 생리적 현상까지 변화한다. 스트레스원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면 항스트레스 호르몬이라 불리는 DHEA * 가 분비되는데, 코르티솔보다 DHEA 농도가 높으면 스트레스로 인한 타격이 덜하다.
스트레스에 대한 태도는 대처 방식을 바꾸고, 대처 방식이 달라지면 육체적 건강과 정서적 안정을 얻음은 물론 삶의 방향도 크게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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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하이드로에피안드로스테론(dehydroepiandrosterone): 부신, 생식샘, 뇌에서 분비되는 스테로이드 호르몬.
스트레스 관리 능력이 행복을 주도한다
스트레스를 관리할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스트레스는 오히려 에너지원이자 큰 자산이 된다. 시험을 치르거나 새로운 무언가를 배울 때,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거나 누군가와 협상할 때 등 중요하면서도 어려움이 동반되는 일을 할 때 자연스레 생기는 부산물이 스트레스다. 어려운 상황을 위협이라고 생각하면 피할 궁리를 하게 되지만 도전할 기회로 받아들이면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
스트레스 경험이 썩 유쾌하지는 않아도 그것을 유익하게 여기면 뇌의 주요 영역들 사이에 협력이 강화되어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궁리하게 되고 수행 능력이 향상된다. 불안과 긴장감을 애써 진정시키려 하기보다 좋은 일에 대한 설렘과 흥분으로 인식하는 편이 훨씬 유리하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자동 발생하는 신체 반응에 당황하지 말고 ‘괜찮아. 내 몸이 지금 상황을 극복하도록 도와주려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스트레스 관리는 행복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스트레스를 제대로 관리할 때, 살아가면서 겪는 예측 불가능한 일들에 적절히 대응하고 그로 인해 행복이라는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흔히들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여행하거나 쇼핑하는 등 즐거운 일을 찾는다. 그러나 내면의 문제를 외부에서 해소하면 효과는 그때뿐이다. 스트레스 관리 능력을 키우면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특별히 어떤 일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 또한, 그로 인해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스트레스 해소용이라는 꼬리표를 달지 않고도 즐길 수 있다.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매 순간의 태도는 쌓이고 쌓여 뇌 구조를 형성하고 습관으로 고착된다. 그러므로 대응 방식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부정적인 감정이 일 때마다 “아, 스트레스받아”라며 ‘스트레스’라는 용어를 쉽게 내뱉으면 스트레스 요인에 더욱 민감해져, 견딜 만한 불편도 확대해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도록 의도하고, ‘스트레스’라는 말 대신 구체적인 감정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다. 스트레스 상황은 인식하되 순화된 말로 자신의 귀에 들리게 하고 마음에 인식되도록 스스로 도와야 한다. 그러한 노력이 반복되어 스트레스 다루는 기술을 익히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주도할 수 있다.
내가 힘들면 상대도 스트레스로 인한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스트레스가 물리학에서 ‘응력’ 즉, 외부의 힘에 저항해 원형을 지키려는 힘을 의미하는 바와 같이, 하루하루 어떤 자극이 주어질지 예측할 수 없는 날들이 펼쳐지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을 지키려 애쓰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부드럽고 유연한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주자.
스트레스를 스스로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타인에게 전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스트레스를 투덜대거나 신경질적으로 표출하면 주변 사람에게 스트레스가 옮겨질 가능성이 크다. 간접 스트레스는 특히 가족 사이에서 발생하기 쉬운데, 소중히 여겨야 할 가족을 스트레스 해소 대상으로 삼아 화풀이하는 건 자신과 가족을 불행에 빠뜨리는 행위다. 가정을 화목하게 꾸리면 가족과 함께하는 그 자체로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다.
스트레스로 나타나는 전형적인 반응이 경직인 만큼, 평소 몸을 이완시키고 마음도 느긋하게 갖자. 자기 주관이 강하거나 욕구가 크면 스트레스에 취약하니 가끔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그리고 뜻대로 되지 않거나 원치 않는 상황이 찾아오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이 사실을 떠올려보자. 스트레스는 삶의 불청객이 아닌, 함께하며 보살펴야 할 동반자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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