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껏 쓰면 이로운 '눈치'

눈치는 너무 없어도 문제지만 너무 많아도 해롭다. 적절하게 건강한 수단으로 이용하려면 관심과 사랑이 동반되어야 한다.
“아들아, 우린 아무것도 필요 없다.” 어느 광고에서 시골집의 부모가 아들에게 영상 통화로 고장 난 텔레비전을 보이며 한 말이다. 그러자 아들은 웃으며 “알았어요, 바꿔드릴게요” 한다.

이런 상황에 광고 속 아들처럼 ‘아, 부모님 집에 새 텔레비전이 필요하구나’라고 이해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개중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하셨으니 신경 쓰지 말라는 뜻인가 보다’라며 넘어가는 이도 있을 것이다.

같은 말과 행동에도 해석이 상반되는 이유는, 전자에게는 있지만 후자에게는 없는 이것 때문이다. 바로 ‘눈치’다.

눈치가 어려우면 조금 쉽게 접근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관심’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가족의 얼굴을 세심히 바라보고, 일상생활을 좀 더 궁금해하고, 가정을 구석구석 살피는 일. 그것이 눈치든 관심이든 사랑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행복으로 이끄는 견인 장치로서 손색이 없다.

“아들아, 우린 아무것도 필요 없다.”

어느 광고에서 시골집의 부모가 아들에게 영상 통화로 고장 난 텔레비전을 보이며 한 말이다. 그러자 아들은 웃으며 “알았어요, 바꿔드릴게요” 한다. 이런 상황에 광고 속 아들처럼 ‘아, 부모님 집에 새 텔레비전이 필요하구나’라고 이해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개중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하셨으니 신경 쓰지 말라는 뜻인가 보다’라며 넘어가는 이도 있을 것이다. 같은 말과 행동에도 해석이 상반되는 이유는, 전자에게는 있지만 후자에게는 없는 이것 때문이다. 바로 ‘눈치’다.

눈치란, 사전적으로 ‘남의 마음을 그때그때 상황으로 미루어 알아내는 것’을 뜻한다. 순우리말 ‘눈’과 값을 나타내는 한자어 ‘치(値)’가 결합한 말로, 공감 능력, 사회인지 능력, 정서 지능, 대인관계 지능, 타인 민감성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특히 고맥락 문화*에서 요구되는 행동 양식이며, 의사소통과 대인관계, 사회생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눈치가 밥 먹여준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세계 최대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는 눈치를 번역 없이 ‘Nunchi’로 등재해 ‘한국인의 높은 사회적 감수성’으로 설명한다. 미국의 언론인이자 작가 유니 홍(Euny Hong)은 그의 저서에 눈치를 ‘한국인의 비밀 무기’라 칭하며 ‘다른 사람의 신뢰를 얻고 서로 화합하며 관계를 맺기 위해 타인의 생각과 느낌을 살피는 섬세한 기술’이라고 소개했다. 이렇듯 눈치는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한편, 용례에 따라 부정적인 쓰임새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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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소통에서 맥락(문맥, 관계, 환경)과 비언어적 요소에 크게 의존하는 문화.


눈치가 ‘빠르다 / 있다 / 없다’


소통은 단순히 말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람은 때로 속마음이나 감정, 욕구 등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말투나 표정, 제스처 등 간접적인 표현으로 에둘러 드러내곤 한다. 심지어 마음을 숨긴 채 정반대로 말하기도 한다. 그러고는 상대방이 자신의 마음을 읽고 그에 맞는 적절한 행동을 취해 주기를 바란다. 그런 낌새를 감지하고 비언어적 정보를 통해 마음을 알아채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말하거나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을 긍정적인 의미로 ‘눈치가 빠르다’ 또는 ‘눈치가 있다’고 한다.

소통이 말로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말을 잘한다고 해서 타인과 소통이 잘되는 건 아니다. 말을 잘하더라도 상대의 감정과 그 자리의 분위기를 고려하지 않으면 대화를 망칠 수 있고, 무신경하거나 무례한 사람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13~69세 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감정 문해력 및 소통 습관>에 대해 조사한 결과, 75.4%가 ‘주변 분위기에 맞추지 않고 눈치 없이 행동하는 사람이 싫다’고 답했다.

상대가 보내는 감정적 신호를 이해하고 반응하면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가령 누군가 한숨을 쉬거나 말투와 표정이 평소와 다를 때, 주위에 있는 사람이 이런 감정적 신호를 무시하면 서로의 유대관계는 약하다고 해석된다. 그러나 미묘한 비언어적 신호를 알아차리고 적절한 반응을 보이면 정서적 유대감이 깊다고 볼 수 있다. 타인의 감정을 파악하려면 목소리와 눈빛의 변화, 말로 표현하지 않은 마음, 무언의 메시지 등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야 하는데, 그러한 정보들을 세세히 살펴 반응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눈치다.

‘눈치 척도’를 개발한 국내 어느 교수는, 조사 결과 눈치 수준이 높은 집단이 자기 존중감과 생활 만족도가 높고 대인관계도 좋다고 했다. 타인의 행동과 감정에 주의를 기울이고 적절히 행동할 때 좋은 정서적 관계를 맺고 자기 존중감을 높여 결국 자신의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든다.



눈치를 ‘보다’


사회적 동물로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타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은 양육자와 의사소통이 가능해지고 또래 집단과 어울리게 되면서 자신이 처한 상황과 타인의 감정을 의식하게 된다. 바야흐로 눈치를 보게 되는 것이다. 눈치는 타고나기도 하지만 성장 배경과 양육자의 성향에 좌우되기도 한다. 심리적으로 억압받는 환경, 양육자의 언행이 일관적이지 않고 권위적이면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으로 자라날 가능성이 크다.

눈치는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살핀다는 점에서 배려에 가까운 면이 있다. 눈치를 잘 본다고 해서 배려를 잘하는 건 아니지만, 배려를 잘하는 사람은 대개 눈치가 빠르다. 눈치를 잘 보는 사람은 타인의 욕구와 감정을 기민하게 읽을 줄 아는 섬세함이 있기 때문에 이를 잘 활용하면 큰 장점이 된다. 그러나 배려의 차원을 넘어 다른 사람 눈치를 심하게 보면 스트레스와 피로가 쌓이고, 걱정과 불안이 발생한다. 상대는 아무렇지 않은 일에 혼자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눈치를 지나치게 보면 소신대로 행동하지 않고 타인을 맹목적으로 따르거나 부당한 일에 저항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상대의 눈치를 보느라 자신이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하게 되면 일이 잘못되었을 때 다른 사람을 탓하기 쉽다. 자신의 삶을 주관적으로 살지 못하는 것이다. ‘눈치 보지 말고 당당하게 행동하라’는 말이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상대를 배려하고 맞춰주는 것과 눈치 때문에 행동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눈치는 보되, 주관까지 잃어서는 안 된다.

눈치를 많이 보거나 스스로 눈치가 빠르다고 생각하면 타인의 마음을 지레짐작하게 된다. 특히 자신의 마음 상태가 좋지 않을 땐 타인의 사소한 말과 행동을 확대해석하고 왜곡할 수 있으니, 눈치로 내린 판단을 확신하거나 눈치로 얻은 정보만으로 섣불리 행동하지 말아야 한다. 눈치를 많이 본다고 상대의 의중을 다 파악할 수 있는 건 아니므로, 자신의 느낌이나 짐작이 틀릴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모호하면 상대에게 묻고 들으며 대화로 진실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눈치를 ‘주다’


마음에 있는 바를 직언하면 상대방의 자존심을 상하게 해 반감을 사게 된다. 상황에 따라 상대에게 요구 사항이나 전하고 싶은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 못하는 때도 있다. 그럴 때 눈치는 유용한 수단이 된다. 관계에 손상을 입히고 싶지 않거나 말할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눈치를 이용해 메시지를 전하고 이를 상대방이 무리 없이 알아듣는다면 매우 성공적인 소통이다.

그러나 한 사람이 눈치를 주고 다른 사람이 눈치로 그 의미를 파악하는 이심전심의 소통법이 항상 통하는 건 아니다. 눈치를 주었는데 상대가 알아채지 못하거나, 상대가 눈치껏 알아서 해주길 기대했는데 그에 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가족 관계에서는 후자의 경우가 많이 발생하는데, 서로의 취향과 성향, 습관, 좋고 싫음을 잘 안다는 전제를 깔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눈치가 없다’는 식으로 핀잔을 주면 그 말을 듣는 사람은 억울하고 속상하다.

자신의 숨겨둔 의도를 눈치채지 못한다고 해서 상대방을 탓할 수는 없다. 상대에게 아무리 눈치를 주어도 본인이 아닌 이상 의도를 오롯이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고, 내 마음에 쏙 들게끔 행동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것을 강요하는 건 상대보다 우위에 서겠다는 뜻이다. 힘이 약한 쪽은 소통이 아닌 자기 보호를 위해 상대방의 안색, 목소리 톤 등의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다. 결과적으로 건강한 관계 형성이 어렵다.

상대방이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거나 말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면 눈치 없다고 타박하지 말고 세세히 알려주어야 한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나의 마음이 어떠한지, 무엇을 원하는지, 상대에게 어떤 점을 바라는지 하나하나 말로 풀어내는 과정이 조금 복잡하고 귀찮을 수 있다. 그렇게 하는 대신 상대방의 눈치 없음을 탓하면 쉽고 편하다. 그러나 시간과 에너지가 드는 과정을 통해 마음의 교류가 이루어지고 솔직한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 ◆ ◆

눈치가 빠르면 효율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 그러나 눈치를 지나치게 보면 스스로 스트레스받고, 반대로 상대에게 눈치를 강요하면 수평적인 관계 형성이 어려워진다. 또, 눈치가 너무 없으면 주위 사람을 답답하게 할 수 있다. 눈치를 적정한 수준으로 건전하게 써야 하는데, 눈치를 소통의 좋은 수단으로 이용하려면 이 또한 눈치껏 해야 한다. 사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눈치가 어려우면 조금 쉽게 접근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관심’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각기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서는 미묘한 변화를 쉽게 알아채고 적절히 대응한다. 상대의 현재 기분이 어떠한지, 어떤 말을 할 때 좋아하는지, 어떤 말을 싫어하는지 등등 관심을 기울이면 상대가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을 줄 수 있다. 그러면 서로 통하게 된다.

엄마는 아이의 울음소리만 듣고도 배가 고픈지, 기저귀를 갈아달라는 건지, 어디가 아픈지, 졸음이 오는지 대번에 알아차린다.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아이를 향한 관심과 사랑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가족 중 누군가에게 슬프거나 괴로운 일이 있는데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묻지도 않으면 가정이 삭막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작은 변화라도 알아주면 가족의 애정과 관심을 받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가족의 얼굴을 세심히 바라보고, 일상생활을 좀 더 궁금해하고, 가정을 구석구석 살피는 일. 그것이 눈치든 관심이든 사랑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행복으로 이끄는 견인 장치로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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