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집의 하루는 언제나 일찍 시작됩니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남편 덕분이지요. 출근이 8시까지라 집에서 넉넉잡고 7시에 출발해도 될 텐데, 남편은 6시면 어김없이 집을 나섭니다. 그냥 시간 맞춰 가면 안 되느냐고 투정도 부려봤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출근 시간을 조금이라도 늦추려는 이유는, 남편의 점심 도시락을 싸야 하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밖에서 사 먹는 밥이 물린다며 몇 년 전부터 도시락을 갖고 다닙니다. 남편이 6시에 나가니, 저는 새벽 5시에는 일어나 도시락을 싸야 합니다. 경험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도시락 반찬을 준비하는 일은 그리 만만치 않습니다.
하루는 새벽에 일어나 보니 반찬거리가 딱 떨어지고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도시락을 안 쌀 수도 없고, 어떡할지 고민하는데 명절에 선물 받은 통조림 햄이 눈에 띄었습니다. 햄을 잘라서 굽고 멸치볶음과 함께 후다닥 도시락을 싸서 남편 손에 쥐여주었습니다. 너무 성의 없이 준비한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고, 남편이 딱히 즐기지 않는 반찬이라 걱정도 됐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점심시간, 아니나 다를까 남편에게 문자 메시지가 왔습니다.
『본 사건은 금일 중식 도시락으로 인해 발생함. 스팸 4cm×3cm 6개, 아기 멸치 324마리, 백미 62,523알. 다음부터는 밥과 반찬의 비율을 맞춰주시길 바랍니다.』
유머로 승화시킨 남편의 반찬 투정을 보는 순간 웃음이 빵 터졌습니다. 제 기분이 상할까 재미있게 말해주는 남편에게 고맙기도 했습니다. 저녁에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과 함께 남편의 문자 메시지를 다시 보며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아들이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말했습니다.
“엄마, 오늘 저녁으로 닭볶음탕 어때요? 아빠가 무진장 좋아하실 텐데.”
“괜찮은데? 그럼 오늘 저녁은 닭볶음탕!”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인 닭볶음탕으로 미안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요즘도 닭볶음탕을 먹을 때면 그날 일이 떠올라, 닭볶음탕은 우리 가족에게 즐거움을 주는 음식이 되었답니다.
Recipe
닭볶음탕
재료(2~3인분)
닭 1마리, 감자 2알, 양파 1개, 당면, 간장, 설탕, 고춧가루, 다진 마늘, 파 2대, 소금, 물엿, 청양고추, 후추, 깨, 200ml 종이컵(계량용)
방법
- 토막 낸 닭을 살짝 익힌 뒤 찬물로 깨끗이 씻는다.
- 감자와 양파를 비슷한 크기로 깍둑썰기하고, 당면은 물에 담가 불린다.
- 닭과 감자를 냄비에 넣어 재료가 살짝 잠기게 물을 붓고 간장 ½컵, 설탕 ⅓컵을 부어 끓인다.
- 재료가 적당히 익으면 고춧가루 ⅔컵, 다진 마늘 한 큰술을 넣고 계속 끓인다.
- 국물이 반 정도 졸아들면 당면과 양파를 넣고 젓는다.
- 양파가 익을 때쯤 파를 잘라 넣고, 소금과 물엿, 청양고추 등으로 간해 한소끔 더 끓인다.
- 불을 끄고 후추를 톡톡 뿌려 잘 섞어준 뒤, 그릇에 담아 깨를 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