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두 살 터울의 형은 남다른 식성을 자랑했습니다. 뭐든 잘 먹기도 했지만 먹는 속도도 빨랐지요. 엄마가 돈가스 2인분을 한 접시에 담아 주면 형이 1.8인분, 저는 0.2인분을 먹는 식이었습니다.
안 되겠다 싶어 엄마에게 주메뉴를 각자의 접시에 따로 담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제 몫을 확보하니 여유 있는 마음으로 만족스럽게 식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번거로운 일이었는지 배식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저는 형의 엄청난 먹성에 또다시 밀려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공평하게 나눠 먹지 않고 홀랑 다 먹어버리는 형이 얄밉기만 했습니다.
하루는 엄마가 주메뉴로 달걀말이를 해주셨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형은 달걀말이에 집중 공세를 펼치더니 제 몫을 남겨 두지도 않고 다 먹어 치웠습니다. 그러고는 무심한 듯 물었습니다.
“넌 왜 달걀말이 안 먹어?”
저는 속상한 마음에 말없이 멸치볶음을 입에 한가득 넣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걸. 평소 주메뉴에 가려져 멸시당했던 멸치볶음이 제 입맛을 확 사로잡았습니다. 바삭한 식감에 달짝지근하고 짭조름하면서도 마늘의 풍미가 깊게 배어 감칠맛이 났습니다. 그날 이후 멸치볶음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반찬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주메뉴를 두고 형과 처절한 쟁투를 벌이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만족스러웠습니다.
언젠가 부모님 댁에서 온 가족이 식사할 때였습니다. 식탁에 놓인 멸치볶음을 보니 어린 시절 일이 떠올랐습니다. 가족들에게 멸치볶음을 좋아하게 된 이유를 이야기하자 형과 엄마는 제가 반찬 때문에 그렇게 힘들어한 줄 몰랐다며 미안해했습니다. 저는 멸치볶음의 참맛을 알게 해줘서 고맙다고 너스레를 떨었지요.
형과의 쟁투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선택했던 멸치볶음. 하지만 이제는 우리 집 식탁에 없어서는 안 될 반찬이 되었습니다.
Recipe
멸치볶음
재료
잔멸치 200g, 마늘 20쪽, 구운 아몬드 10개, 청양고추 1개, 물엿 4큰술, 식용유 100ml, 참깨
방법
- 마른 팬에 멸치를 덖어 수분을 날려보낸다.
- 팬에 식용유를 붓고 얇게 썬 마늘을 약불로 살짝 튀긴다.
- 덖은 멸치를 마늘이 든 팬에 넣어 함께 볶는다.
- 불을 끄고 물엿과 잘게 부순 아몬드를 넣어 섞은 뒤 참깨를 뿌린다.
* 매콤한 맛을 원한다면 3에서 청양고추를 다져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