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터닝포인트

“정말 잘 그렸네. 아빠가 보면 좋아하시겠다.”
“아빠는 집에 안 들어와요.”

20여 년 전, 미술 선생님의 말에 다섯 살 딸아이가 한 대답이다. 밤늦게 퇴근한 나는 아내가 전해주는 얘기를 듣고 생각 회로가 정지한 듯 멍해졌다. 딸에게 아빠라는 존재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다니, 충격이었다. 정신을 수습하고 딸아이 방으로 갔다. 창에 비치는 희미한 달빛 아래 곤히 잠든 딸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이른 새벽에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는 나는 조심히 방문을 열어 잠든 모습이나마 딸아이를 볼 수 있지만, 딸아이는 아빠를 꿈에서나 볼 수 있었으리라.

가장의 성공이 곧 가족의 행복이라 믿었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이른 시간에 한 시간 넘는 거리를 출근하는 것도 힘들지 않았고, 퇴근 후 직장 동료들과 보내는 시간도 회사에서 인정받는 데 필요한 과정으로 여겼다. 그렇게 가족의 품에 행복을 안겨주려 쉼 없이 달렸지만, 결국 아이들의 마음에 아빠의 사랑을 향한 그리움만 남겼다.

얼마 후 인사 발령 시즌이 돌아왔다. 밤낮없이 일에 매달리던 나를 좋게 보신 영업부 부장님이 물었다.

“김 대리, 이번 인사 발령 때 원하는 곳 있나? 그동안 열심히 했으니 원하는 곳에 가도록 힘써주겠네.”

예전의 나라면 승진에 유리한 쪽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집과 가장 가까운 지점에서 근무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새로 발령받은 곳은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의 지점이었다. 잠든 아이들을 마주하는 대신 네 식구가 함께 식사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회사 앞까지 마중 나온 아이들과 손잡고 퇴근하는 날도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을 안겨주었다. ‘나의 성공이 곧 가족의 행복’이란 생각은 ‘함께하는 것이 곧 가족의 행복’으로 바뀌었다. 딸아이의 한마디 말이 우리 가족을 진정한 행복으로 나아가게 하는 ‘터닝포인트’가 된 것이다.

앞만 보고 달려가던 나를 언제나 믿어준 아내와 아이들에게, 지면을 빌려 마음을 전하고 싶다.

“기다려줘서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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