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대방의 말투나 표정이 조금만 달라져도 금세 알아차리는 사람, 작은 소음에도 피곤해하는 사람, 불편함을 느꼈던 상황을 하루 종일 곱씹는 사람, 잠자리가 바뀌면 쉽게 잠을 못 이루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왜 그렇게 예민해?”
비난의 의도가 없었다 하더라도 이 한마디는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로 남을 수 있다. 나에게 아무렇지 않은 일이 상대에게는 불편할 수 있는데, 이를 과한 반응으로 치부하면 상대는 자신이 느끼는 감각과 감정을 존중받지 못한 데 서운함과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상대의 반응이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고 생각될 때, 우리는 그 반응 뒤에 있는 이유나 맥락을 헤아리려 애쓰기보다 쉽게 ‘예민하다’라는 꼬리표를 붙이곤 한다. 내가 느끼는 감각과 감정의 정도를 기준으로 삼아 상대의 반응이 유난스럽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이처럼 예민함을 성격적 결함으로, 맞추기 까다로운 성격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마음을 편하게 먹으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는 일로 여기기도 한다. 예민함에 대한 이러한 통념은 사실일까?
예민한 면은 누구에게나 있다
사람마다 자극을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정도에는 차이가 있다. 같은 온도에도 춥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원하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같은 소리를 들어도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누군가는 거슬린다고 한다. 같은 말을 들어도 어떤 사람은 금세 잊어버리지만, 어떤 사람은 마음에 오래 담아둔다. 사람마다 자극에 따른 반응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심리학에서는 외부와 내부의 자극을 더 깊고 세밀하게 처리하는 기질적 특성을 ‘감각처리 민감성(Sensory Processing Sensitivity, SPS)’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는 태어날 때부터 타고나는 특성으로, 평생 변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의지로 조절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타고난 기질과 상관없이 성장 과정에서 겪은 경험으로 인해 특정 자극에 민감해지는 경우도 있다. 가령, 어린 시절 자주 혼나면서 자랐다면 다른 사람의 표정 변화에 민감할 수 있다. 반복해서 비난받은 경험이 있다면 소소한 말에도 상처받기 쉽고, 오랜 세월 긴장 속에서 생활했다면 평범한 상황에서도 몸이 저절로 경계 태세를 갖춘다. 과거의 부정적인 기억이 감각의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비슷한 상황을 만나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신체적 피로와 질병으로 면역력이 떨어진 경우, 해야 할 일이 많은 경우, 혹은 가치관이 충돌하거나 삶에 변화가 생겼을 때 등 몸과 마음의 상태에 따라 자극에 대한 반응이 달라질 수도 있다. 사람의 신체적·정신적 에너지는 한계가 있기에, 몸이 힘들고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평소 그냥 지나칠 법한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이와 같이 영역과 정도의 차이일 뿐, 사실은 누구에게나 예민한 부분이 있다. 그리고 저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극을 처리하며 살아간다.
예민함은 동전의 양면
사람이 가진 다양한 모습 중 한두 가지 면모만 보고 ‘예민한 사람’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열이 높다는 증상만 보고 병명을 진단하는 것과 같다. 편견과 낙인 대신 나와 상대의 감각 안테나가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름을 인정할 때 나의 기준만이 정답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내가 무심코 지나친 자극이 상대에게는 또렷할 수 있음을 수용하는 태도는 타인의 세계를 내 기준에 맞추려 하지 않고 그 자체로 존중하는 성숙한 모습을 이룬다.
내가 ‘사소한 것’, ‘별거 아닌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이 모든 사람에게 같은 크기는 아니다. 상대방이 호소하는 불편이나 제시하는 요구를 깊이 들여다보지 않고 예민한 성격 탓으로 치부해 버리는 행위는 일종의 소통 회피다. 그러나 상대방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들으면 그에게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되고, 갈등의 진짜 원인을 찾아 해결할 수 있다.
화재경보기가 미세한 변화에 반응해 가끔은 화재가 아닌 상황에 울리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큰 화재를 막을 수 있듯, 예민하게 반응하는 면이 때로는 소통에 걸림이 되고 삶을 버겁게 하지만 그에 따른 유익도 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며, 간과하기 쉬운 변화를 기민하게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민감성은 음악, 미술, 요리 등 다양한 영역에서 뛰어난 역량으로 발휘된다. 일을 꼼꼼하게 처리하거나 신체를 건강하게 관리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세심한 배려와 공감 역시 민감성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민감성은 창의성, 통찰력, 신중함으로 이어지는 강점이 되기도 한다.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분이 타인에게 지속적으로 불편을 주는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 자체를 극복하거나 교정해야 할 약점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잘 다루면 자극을 한층 깊이 받아들이는 특별한 자산이 된다.
수용과 배려가 만드는 안정감
상대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분이 자극되었을 때, 어떻게 하면 갈등을 빚지 않고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을까. 예민한 반응의 밑바탕에는 불안이 자리하는 경우가 많고, 불안을 해소하려면 안정감이 필요하다. 마음을 편안하게 먹는 것은 의지만으로 쉽게 조절할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상대에게 말로만 “신경 쓰지 마”, “그냥 잊어버려”라고 하기보다는 실질적으로 상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어야 도움이 된다.
사람은 자신의 감각과 감정을 인정받을 때 안정감을 느낀다. 상대가 느끼는 바를 다 이해하지는 못해도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다”며 반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용의 태도를 보여주어야 한다. 당장의 불편함이 사라지지는 않더라도 자신이 느끼는 바가 잘못되었다거나 틀리지 않았다고 이해받으면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다. 상대를 수용하는 방식으로 대하면 그런 반응이 나타난 이유를 살피게 되고, 상대를 이해하는 폭도 깊어진다.
소음이나 빛을 조절하는 등 편안하게 느낄 만한 환경을 조성하거나 표정과 말투를 좀 더 부드럽게 하고, 상대가 갑작스러운 변화에 어려움을 느낀다면 일정과 계획을 미리 알려주는 것도 좋다. 감각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안전하다 느끼고 마음의 평온을 찾게 되면, 꼿꼿이 세운 안테나를 조금 내려놓을 여유가 생긴다. 주변 자극에 대한 경계와 긴장이 낮아져 같은 자극이라도 덜 위협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이해와 배려가 한쪽의 몫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예민한 부분에 자극받았을 때 서운함이 커지는 이유가 ‘이 정도는 당연히 알아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기대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상대는 내가 어떤 부분을 예민하게 생각하는지 모를 수도 있고, 미처 타인을 살필 여력이 없을 수도 있다. 나에게는 크게 다가오는 자극이라도 상대는 인지조차 못 하는 경우도 있다. 상대가 알아서 내게 맞춰주기를 바라기보다 나의 상태를 먼저 말해주면 불필요한 마찰을 줄일 수 있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영역과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기도 해서, 같은 자극이라도 어떤 때는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내고 어느 때는 못 견뎌 한다. 세상을 받아들이는 감각이 늘 일관적이지 않은 불완전한 존재가 인간이다.
밤길을 홀로 걸으면 바람에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담벼락 위의 길고양이를 보고 심장이 뛰기도 하는 것처럼, 감각의 날을 세운다는 건 불안에서 자신을 지켜내려는 방어에 가깝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닥칠까 봐,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까 봐, 소중한 사람을 잃을까 봐, 사랑받지 못할까 봐…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크고 작은 불안을 우리는 늘 안고 살아간다.
그렇기에 상대를 이해하고 친절과 따뜻함으로 대하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어두운 밤길이라도 누군가와 함께 걸으면 신경이 덜 곤두서듯, 가족은 서로에게 뾰족한 안테나를 내려놓게 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함께하는 길에 행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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